마인드
4월 1일, 만우절에 시작한 달리기는 농담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1보의 기적' 캠페인 때문이었다. 순직경찰관 자녀들에게 1km당 100원씩 기부하는 좋은 취지에 마음이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분명 뭔가 달라진 것 같다.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 동안은 월 100km씩 달렸다. 하루 평균 3.3km 정도. 별것 아닌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 만만치 않았다. 비 오는 날도, 피곤한 날도, 바쁜 날도 달려야 했다. 때로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운동화 끈을 묶고 나가기도 했다. 아내는 "무리하지 말라"라고 했지만, 한 번 시작한 것은 끝까지 해보고 싶었다. 7월부터는 200km로 늘렸다. 하루 평균 6.7km. 거리가 늘어날수록 몸보다는 마음이 더 힘들어졌다. '오늘은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날씨도 안 좋은데 굳이?',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데'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달릴수록 달리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억지로 나가던 발걸음이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서는 순간,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달리는 동안만큼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도, 육아의 피로감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가장 무더웠던 8월에는 300km에 도전했다. 하루 평균 10km.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매일 10km를 달린다는 것은 시간도 시간이지만 체력적으로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미 몸과 마음이 달리기 리듬에 익숙해져 있었다. 오히려 달리지 않는 날이 더 불편했다.
달리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아이들과 좀 더 놀아줬어야 하는 건 아닌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제대로 표현했는지. 발걸음에 맞춰 생각들이 정리되었다. 복잡했던 마음이 점점 단순해졌다.
가끔 다른 러너들을 만난다. 새벽에, 저녁에, 각자의 페이스로 묵묵히 달리는 사람들. 서로 인사를 나누지는 않지만 무언의 응원을 보낸다. '오늘도 달리는구나', '나도 힘내야지' 하는 마음들이 전해지는 것 같다. 오늘로 34일 연속 10km 달리기를 성공했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대단한 일을 해낸 것도 아닌데, 뭔가 뿌듯했다. '나도 이런 걸 해낼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달리기뿐만 아니라 다른 일들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포기하려던 일들을 조금 더 버텨보게 되었다.
11월 2일과 11월 16일, 두 개의 마라톤 풀코스에 접수했다. 원래는 11월 23일 인천마라톤을 준비했었는데 개인 사정으로 취소하게 되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대회라도 반드시 풀코스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42.195km. 생각만 해도 막막하다. 지금까지 가장 멀리 달린 게 하프코스 정도인데,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하지만 걱정보다는 기대가 더 크다. 5개월 전 첫 1km를 힘겹게 달렸던 내가 이제 풀코스에 도전한다니.
마라톤은 정말 인내의 스포츠인 것 같다. 빠르게 달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끝까지 달리는 게 중요하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수도 없이 찾아오지만, 그때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버텨낸다.
달리기는 나에게 새로운 마인드를 선물해 주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천천히 해도 된다'는 여유, '꾸준히 하자'는 인내심. 이런 것들이 삶의 다른 영역에도 스며들고 있다. 달리면서 달라진 나. 아직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하기는 이르지만, 분명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가 나쁘지 않다. 오늘도 운동화 끈을 묶으며 생각한다. '오늘은 어떤 나를 만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