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럽게 또 독하게

고독한 러너

by 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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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세 번째 마라톤 풀코스를 마치고 다리를 절며 혼자서 터덜터덜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다. 아마 풀코스에 도전하면서 스트레칭을 전혀 하지 않고 출발한 러너는 나밖에 없을 것이다. 여의나루 2번 출구에 올라와서 한강 전경을 내려다보며 이미 삼삼오오 모여 몸을 풀고 있는 러너들 사이로 행사장까지 700미터 남짓한 거리를 느긋하게 걸어갔다. “풀코스 거리까지 더하면 오늘 50km 넘겠는데?” 내 옆을 지나가던 러너들 간의 대화가 귀에 꽂혔다. 그럼 벌써 어림잡아 워밍업으로 5km를 넘게 달린 것이다. 시작 전부터 저렇게 많이 뛰고 풀코스를 달린다는 것은 초보 러너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결과적이지만 나처럼 아예 스트레칭을 포함한 워밍업을 하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풀코스 출발 전 1~2km가 아닌 더 많이 달리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일단 워밍업을 전혀 하지 않고 풀코스를 완주해 봤으니 다음 풀코스 대회 때에는 대회장에 일찍 도착하여 조금 더 과격하게 워밍업을 해보고자 한다. 이렇게 다짐해 놓고 또 부랴부랴 도착해서 물품보관소에 짐 맡기다가 급하게 출발할 수도 있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10km를 달리려고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두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종아리와 허벅지에서 ‘풀코스 뛰고 뭉친 근육 제대로 풀지 않은 대가다.’라고 시위하는 듯했다. 그렇게 오전에 눈은 떴으나 기상 직후 달리기는 하지 못했다. 오전에 조금 걸으면서 뭉친 근육들 상황을 보고자 했다. 제자리에서 천천히 무릎을 올리기를 반복하자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완벽하게 풀리지는 않았지만 아침 6시 때와는 사뭇 달랐다. 전날 마라톤 풀코스를 달렸다고 오늘 10km 달리기를 하지 못한다면 190여 일 넘게 매일 10km 달리기 해놓은 것이 아까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성장통은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매일 뛰어놀면서 근육통은 함께 했기에 이 정도의 근육통은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점심에 아들과 햄버거를 하나씩 먹은 뒤, 아들을 태권도장에 데려다줬다. “아빠 또 달리기 할 거야?”, “응, 배도 부르고 뛰어봐야지.”라며 아들 앞에서는 자신 있는 척해놓고 풀리지 않은 근육통과 함께 집 앞 천변으로 나왔다. 워치를 작동시키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내 몸 같지 않았다. 어제 풀코스 출발 전후의 가벼움은 온 데 간데없고,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좌우로 고통들만 오며 가며 했다. 업힐(언덕) 구간은 도저히 평소처럼 달릴 수 없었다. 무리하지 않고 10km만 완주하자는 마음으로 평소 달리던 업힐 구간은 최소한으로만 지나가고 대부분 평지를 달렸다. 정확히 말하면, 달렸다기보다는 억지로 달려냈다. 평소 달리기보다 몇 배는 더 고통스러웠지만 힘들고 아픈 경험이 더 기억에 남는 법이다. 고통스럽게 절뚝이면서도 10km를 달려낸 것을 생색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오늘도 해낸 사람,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 임을 꾸준히 인지시키는 과정이다. 힘들다고 하루 쉬면 우리 몸은 ‘어라? 힘들다고 생각하니까 쉬네? 쉬어지네? 그럼 다음 날도 쉴 수 있는 거네?’라며 고통보다는 쉼을 종용하게 된다. 좋은 습관이나 나쁜 버릇과 같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휴식과 회복은 필수다. 매일 10km 달리기도 매일 심장이 터지게 달리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만큼 달렸다면 190일 넘게 이어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나름 페이스를 조절하며 달렸기 때문에 부상 없이 매일 달리기가 가능했고, 마라톤 풀코스 다음 날도 통증을 수반하면서도 달려냈다. 처음엔 달릴 수 없을 것 같다가도 3km, 4km, 5km 부근을 지나면서 서서히 근육통이 풀리고 평소 페이스만큼은 아니지만 1~2km 때 겨우 달리던 페이스에서 6분대 페이스까지 올라왔다. 여기서 또 깨닫는다. 내 몸은 5km 이후부터 풀리는구나. 그럼 다음 풀코스 대회 때는 10km 부근까지 최대한 보수적으로 달리고 몸이 확실히 풀렸을 때부터 조금 더 페이스를 끌어올려봐야겠다는 전략이 생겼다.


오늘도 달리기를 마치고 필사를 마친 뒤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아직도 종아리 뒤쪽, 오른쪽 무릎 바깥쪽, 양쪽 허벅지 안쪽에 통증이 있다. 어제와 오늘 아침보다는 확실히 많이 풀린 느낌이다. 이 느낌이 좋다기보다는 즐기는 편이다. 사람마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다를 텐데 나 같은 경우에는 운동 후 몸 곳곳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뻐근함이 느껴질 때 ‘아직은 쓸 만한 몸이군.’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부상을 당하거나 몸이 아파서 느껴지는 고통과는 다를 것이다. 진짜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아직까지 크게 부상을 당해보지 않아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앞으로도 큰 부상을 당할 만큼 몸을 혹사시키지 않을 예정이다. 부상을 당할 것 같으면 바로 멈추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큰 걱정이 없다. 나이가 들면서 내 몸에 대한 소중함, 건강에 큰 관심이 있어서 더욱 조심하며 관리하고 있다. 주변 지인들 중 운동을 하다가 부상을 당해 1~2개월 길게는 6개월에서 1년까지 좋아하는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재활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조금 무리하다가 다쳐버리면 오랜 시간 운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데 다칠 바에는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주의다. 어떻게든 운동을 하다가 실수로 다친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일단 다치는 순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친 지인들을 보면 일단 자신에 대한 자책부터 한다. “내가 순간 조급해서, 굳이 무리하지 않았어도 되는 상황이었는데”라는 말에 옆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없다.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수밖에 없다.


오늘 혼자서 10km를 달리며, 어제도 혼자서 42.195km 풀코스를 달리며 고통스러웠고, 스스로도 이 정도면 독하다고 생각했다. 빠르게 달리는 러너는 아니지만 혼자서 꾸준하게 포기하지 않는 오늘도 해내는 고독한 러너가 되기로 했다. 대회장에서 현수막마다 다양한 러닝 크루, 클럽들을 보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는 러너들을 보았다. 서로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고 사진도 촬영해 주는 건전한 클럽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는 마라톤 클럽에 속해 달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잠시나마 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조용히 혼자 달리면서 인생의 고독을 씹어보고자 한다. 매일 혼자 달리는 것은 아니고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아내와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함께 달리고 있으니 나름 소수 러닝 클럽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편하고 소중한 러닝 클럽인 셈이다.


고통을 즐기고, 가능하면 독하게 달려보고자 한다. 빠르게 달릴 수 없다면 오랫동안 꾸준히 달려볼 생각이다. 다음 마라톤 풀코스 대회는 3월 마지막 주와 4월 첫째 주로 일주일 간격으로 신청을 해놓았다. 과연 일주일 간격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달려도 괜찮을지, 내 몸이 버텨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일단 다음 주 주말에 있을 고양하프마라톤 하프코스에 집중할 계획이다. 3주 전 아내와 첫 10km 대회에 참가했는데 다음 주에는 아내와 함께 하프코스 완주를 목표로 함께 달릴 예정이다. 혼자 고독을 즐기며 달릴 때에는 나 홀로 러닝을 찬양하지만 아내와 대화하며 달릴 때에는 함께 달리는 것도 좋다. 아직 30대 후반이니 막무가내로 고독만 찾기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에는 최대한 고독함을 즐길 것이다. 그러다가 아내,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는 최대한 집중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미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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