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러닝 함께 움직여

부러움

by 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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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러닝 참 좋더라고요.’, ‘부부가 함께 달리는 게 가능한가요?’, ‘아름다운 러닝부부!’ 부부가 함께 달린다는 것은 달리는 행위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달리기뿐 아니라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것은 썩 괜찮은 사이라는 것이다. 괜찮음을 넘어 좋은 사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비단 부부 사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직장 내 동료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원수지간보다는 좋은 사이가 낫다. 팀 동료 간 사이가 서먹서먹한 상황에서 그 팀의 성과가 잘 나올까? 물론 팀 내에 업무를 오래 했거나 베테랑이 있으면 성과는 잘 나올 수 있다. 거기까지다. 출근 후 대면 시 불편한 게 아니라 출근 전부터 그 동료를 떠올리며 스트레스 지수가 상승한 적이 없는가? 그렇다면 직장인 누구나 부러워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싫은데 함께 외부 출장을 가야 하고, 식사를 해야 하고, 집에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 더 많이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떠나거나 그 사람이 떠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자. 요즘 초등학교는 한 학급에 20명 내외로 구성되어 있다. 30년 전, 초등학교 재학 당시에는 학급에 50명까지는 아니지만 45명 내외였다. 시간이 많이 흐르기도 했지만 학급에 누가 있었는지 모두 기억나지 않는다. 몇 명만 기억날 뿐이다. 동창에 대한 기억은 외적인 모습과 그 당시에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린 시절임에도 옆에 있으면 편하고 좋은 또래가 있고, 나에게 어떤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말 그대로 그냥 불편하고 맞지 않은 또래가 있었다. 함께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에도 같은 팀을 하고 싶은 친구가 있고, 곧 죽어도 상대팀으로 만나서 무조건 이기고 싶은 친구도 있었다. 딱히 악감정으로 기억하진 않는다. 정확히 왜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단순히 성향이 맞지 않았던 것일까. 학년이 올라가면서 속으로 ‘저 친구와는 같은 반 되고 싶다. 쟤랑은 같은 층도 되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는 데 있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주위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피해를 주는 사람을 극도로 경계했던 것 같다. 마치 누가 흡연을 해도 상관없지만 공공장소나 아이들 앞에서 생각 없이 연기를 내뿜는 흡연자를 경계하는 것처럼.


가정에서는 가족, 학교에서는 친구, 직장에서는 동료, 동호회에서는 회원들과 무언가를 함께 하고, 공유하고 공감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다른 사람의 삶을 부러워할 필요 없다. 인위적인 공감,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면 이미 충분히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꼭 다른 사람과의 소통하는 것으로 삶의 기준을 세우거나 행복의 정도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서도 잘 달리고, 하루 종일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그 사람에게는 행복일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고, 누군가와 함께해야 할 때도 있다. 나약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적정 시기까지는 누군가에게 길러지고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다. 굳이 그 누군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떻게 길러졌음에 따라 향후 이 아이가 만나는 사람, 환경, 교육들이 달라진다. 아이가 주양육자를 선택할 수 없다. 자라면서 좋은 부모, 좋은 친구, 좋은 어른,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고 탓할 필요도 없다. 만나보지 못해 쉽사리 따라 하기도 어렵겠지만 나부터 좋은 친구, 좋은 어른, 좋은 스승, 좋은 부모가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주변에 좋은 사람을 두고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종종 자신의 몸을 탓하거나 러닝화를 살 돈이 부족하다고 탓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현재 부어오른 자신의 몸은 누가 만든 것일까. 돈이 부족한 상황은 누가 만든 것일까. 업무적으로 오랜 기간 미성년자가 부모 탓, 주변 환경 탓을 하면서 비행 및 범죄의 길로 빠지는 것을 많이 봐왔다.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니 주변 탓을 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주변 탓과 동시에 주변 또래 중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동병상련을 느끼는 또래들과 함께 탓하기 시작한다. 편의점에서 음료 한잔 마시며 탓하는 것이 아니라 음주와 흡연을 하며 신세 한탄을 넘어 일탈을 시작한다. 이것이 청소년 범죄의 시작이다.


부부러닝으로 시작한 글이 청소년 범죄까지 이어졌다. 아내와 함께 달리면서 사회적 이슈, 육아, 재테크 등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평소에도 집에서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매번 진지한 대화가 아닌 서로 간 농담도 주고받는다. 연애 시절부터 소위 ‘대화 코드’가 잘 맞았다. 대화 코드가 잘 맞는다는 것은 인생의 가치관, 바라보는 방향이 같다는 뜻이기도 하다. 평소 가지고 있는 생각이 비슷하기 때문에 대화를 해도 거리낌이 없다. 짧디 짧은 인생에서 그나마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많을 아내와 달리기도 하고, 헬스장도 종종 함께 가고, 같은 책을 읽고 서로 느낀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긴다. 우리 부부의 모습은 종종 극소수 누군가의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 모습이 부러운 모습이 아니라 이렇게 하려고 결혼한 것이고, 결혼 생활 별 거 없습니다.”라고 답한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난 뒤에는 결혼 생활도 마라톤에 비유할 수 있다. 결혼 전과 마라톤풀코스 출발 전 심장이 마구 요동친다는 점이 같다. 일단 시작하면 정신이 없다. 각자의 결혼 생활, 각자의 레이스가 펼쳐진다. 배우자와 여행을 가고, 아이를 낳고, 가끔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마라톤도 생각지 못한 시점에서 다리가 올라가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여 레이스를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생긴다. 오버페이스를 했다가 후반부에 기진맥진하는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평온한 레이스를 펼치기도 한다. 모두가 처한 상황이 다르다. 결혼 생활과 마라톤풀코스 모두 중간중간에 위기가 찾아오지만 5km마다 급수대가 있고, 달콤한 초코파이, 바나나도 있다. 매 순간마다 고통이 따르고 힘들지만 그 순간을 이겨내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완주했다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그 자신감과 성취감을 아내와 함께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맛볼 것이다. 부부러닝을 통해 함께 맛볼 수 있다는 것은 둘 모두 부상 없이 건강하고 사이좋게 달리고 있다는 말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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