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기부 취지가 좋아서 시작한 달리기였다. 쓰러진 동료의 가족을 위해, 누군가의 슬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 운동화 끈을 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달리기는 더 이상 남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매일 아침 5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진다. 달리기가 인생의 일부분이 된 것이다. 매일 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어느 날부터 매일 10km를 달리는 도전을 시작했다. 오늘로 ‘매일 10km 달리기’ 198일째다. 오늘은 기상 직후 종아리가 뻐근했다. 야근으로 몸도 찌뿌둥했다. 그래도 달렸다. 빠르게 달렸다가 천천히 달리는 인터벌 훈련을 해봤다. 훈련이라고 했지만 체계적이지 않았다. 일단 달려보고 숨이 차면 멈추는 식이었다. 매체에서 소개하는 정석 방식보다 훨씬 넉넉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완벽한 훈련은 아니었지만, 10km를 채웠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종아리가 뻐근하고 피곤해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달리는 이 삶, 이것이 혹시 일종의 중독이 아닐까? 그렇다. 나는 달리기에 취해 있다. 아니, 미쳐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전혀 두렵지 않다. 오히려 자랑스럽다.
돌이켜보면, 무언가에 완전히 빠져든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피곤함을 핑계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이 무겁고 눈꺼풀이 내려앉아도 일단 일어난다. 날씨가 나빠도 나간다.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쳐도 다시 한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의지가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자리한 무언가, 바로 취함이다. 꼭 달리기가 아니어도 좋다. 당신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는가. 맡은 업무에 완전히 몰입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순간. 오래도록 공을 들인 분야에서 어느 날 문득 달라진 자신을 발견했던 순간. 밥 먹는 것도 잊고 무언가에 빠져들어 새벽을 넘겨버린 기억. 취하거나 미쳐본 적이 있는가. 사람들은 종종 그런 몰입을 두고 걱정한다. “건강은 괜찮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물론 절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인생에 한 번쯤은, 그 걱정을 살짝 뒤로 미뤄두고 온전히 빠져드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한 번쯤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
무언가에 취한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문제는 무엇에 취하느냐 일뿐이다. 매일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걷는 삶이 있는가 하면, 매일 달리기에 취해 두 발로 힘차게 대지를 박차는 삶도 있다. 같은 취함이지만, 하나는 삶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하나는 삶을 조금씩 세운다. 하나는 아침을 두렵게 만들고 하나는 아침을 기다리게 만든다. 물론 사회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식 자리에 가서 술을 마셔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예외로 하겠다. 198일 전에는 이 작은 습관 하나가 이렇게까지 나를 바꿔놓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종아리가 터질 것 같은 날도, 잠이 쏟아지는 새벽도, 비가 거세게 쏟아지는 아침도 달리다 보면 어느새 나는 비상하고 있었다. 두 발은 땅을 밟고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훨훨 날고 있었다. 몸은 지쳐도 마음은 오히려 맑아지는 그 역설적인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무언가에 취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달리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포기를 모르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새벽의 고요함을 사랑하는지, 땀 흘린 뒤의 뿌듯함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무언가를 끈기 있게 해내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달리기가 내게 준 것은 체력만이 아니었다. 나 자신에 대한 신뢰였다. 그 신뢰는 달리기 밖으로도 번졌다. 오늘 이 하루를 완주했다는 감각이 책상 앞에서도, 글을 쓰는 순간에도, 사람을 마주하는 자리에서도 등줄기를 곧게 세워주었다. 달리기 하나가 삶의 태도 전체를 바꿔놓은 것이다. 작은 취함 하나가 삶이라는 긴 레이스를 통째로 다르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무언가에 취해 있을 때 가장 빛난다. 눈빛이 달라지고, 걸음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진다. 억지로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 즐거워진다. 잠들기 전 아침이 기다려진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채울지 기대가 된다. 취함이란 결국, 삶을 삶답게 만드는 힘이다. 당신은 지금 무엇에 취해 있는가. 혹은, 아직 취할 대상을 찾고 있는가. 괜찮다. 늦지 않았다. 다만 찾았다면, 그때는 망설이지 말고 깊이 빠져들어 보길 권한다. 적당히 하다가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조금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해보는 것이다. 비틀비틀 걷는 삶이 아닌, 두 발로 힘차게 비상하는 삶을 위해 오늘도 달렸다. 취하거나 미쳐보는 삶, 그것이 결국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