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러닝을 처음 시작하는 지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신발은 뭐 신어야 돼? 러닝화가 너무 많네.”, 가장 많이 하는 걱정은 “내가 뛸 수 있을까?”, 가장 많이 하는 핑계는 “살쪄서 못 뛰어. 무릎이랑 발목, 관절이란 관절은 다 아파.”
러닝은 다른 운동에 비해 함께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고 혼자서 충분히 가능하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도 없다. 달리고 싶을 때 언제든지 자유롭게 달리면 된다.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도 없다. 집에 있는 운동복과 운동화를 신고 먼저 걷기부터 시작한다. 주변 지인들을 봤을 때 빠르면 2주에서 늦어도 4주면 500m에서 1km를 걷고 뛰는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천천히 걷고, 천천히 달리면 그만큼 부상의 위험도 낮다. 러닝을 시작하자마자 빠른 시일 내에 부상을 당하는 러너들을 보면 준비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몸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달리다가 몸에 무리가 오는 경우를 종종 봤다. 가볍게 달리고 싶은 마음에 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달리니 하체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다. 상체가 무거워 하체에 불편함이 있다며 러닝 시작부터 무릎보호대, 발목보호대 등을 착용하고 나온다. 보호대를 착용하고 무리하게 달리는 것보다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고 더 천천히 달려볼 것을 추천한다. 육아는 장비빨이라는 말이 있다. 게임이나 운동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값비싸고 좋은 장비를 착용하면 심리적으로도 효과가 있고, 실제로 몸을 보호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장비의 맛을 봐버리면 장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없다. 먼저 내 맨몸으로 부딪쳐보고 약간의 통증을 느꼈을 때 서서히 준비해 놓은 장비들을 착용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처음부터 필히 장비에 의지해야 하는 몸 상태라면 어쩔 수 없지만 처음부터 지레 겁먹고 각종 장비들을 착용할 필요는 없다. 달리기 뿐 아니라 다른 운동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운동을 통해 내 신체 부위를 먼저 근육으로 단련시켜야지 처음부터 아이템을 착용하는 것은 순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호대, 테이핑 등 아무런 장비 없이 맨몸으로 매일 달려도 괜찮을까? 내 경험상 아무 문제없었다. 마라톤 풀코스 3회 완주했는데 보호대, 테이핑 없이 운동복과 러닝화만으로 달렸다. 달리는 데에는 장비보다 달리고자 하는 마음과 매일 달리는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이렇게 달리면 “무슨 재미로 달려요?”라며 시시해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시시할 수 있고, 무료해 보일 수 있다. 그렇게 인식될 뿐이지 매일 달려본 러너라면 알 수 있다. 이 사소한 시시함이 러너들에게는 큰 행복이자 삶이다.
‘시시하고 스무스 한 템’이라고 표현했다. 스무스(smooth)는 ‘매끄러운, 잔잔한’이라는 뜻이다. 나에게 달리기 자체가 시시하고 잔잔한 장비인 셈이다. 매일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지루함을 느낄 수 있으나 달릴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달렸는데 컨디션이 좋아진 날도 있고, 컨디션이 정말 좋다고 생각하고 달렸는데 달리자마자 다리가 무거워진 날도 있다. 이렇게 매일이 다른데 시시하고 지루할 틈이 있겠는가? 달리기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자리 잡는데 정확히 얼마나 걸린 지 기억나지 않는다. ‘매일 10km 달리기’는 오늘로 195일째를 맞이했다. 10km라는 수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매일 달리기’가 시스템이다. 상황에 따라 한 번에 10km를 달릴 수 없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엔 하루 종일 시간 날 때마다 달려서 틈새런으로 10km를 만들어 볼 생각도 있다. 스무스함과 어울리게 융통성 있게 일정을 조율하고 부드러운 사고로 헤쳐 나갈 것이다.
각 개인마다 하루 24시간 속에서 시시하지만 매일 해내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숨 쉬듯 실천하는 습관이 있다면 이미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한번 구축해 놓은 시스템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시스템이 정착되면 또 다른 시스템을 서서히 구축하면 된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루하다. 재미가 없다.’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쳇바퀴가 반복해서 도는 것에 대해 하루 종일 무의미하게 돌아가는, 필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쳇바퀴가 반복해서 돌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꾸준함’으로 볼 수도 있다. 나는 꾸준함을 중요시한다. 처음부터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 누구든 처음부터 잘할 수 없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어제보다 조금씩 나아지면 된다.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달리기를 내 인생의 ‘시시하고 스무스 한 템’, 즉 시스템으로 장착했다. 달리기가 시스템화되는데 6개월 정도 걸렸다. 달리기 뿐 아니라 글쓰기, 독서도 시스템화시키면 굳이 시간 내서 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이틀 해서는 안 된다. 꾸준히 해야 한다. 아니 조금씩이라도 매일 해야 한다. 우리가 숨을 쉴 때 1시간 몰아서 쉬고, 1시간 몰아서 내뱉지 않듯이 규칙적으로 쓰고, 꾸준히 달리고, 지속적으로 읽고를 반복하면 된다. “그게 무슨 도움이 돼?”라고 말하기 전에 일단 뭐라도 해보길 바란다. 아니 나부터 잘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