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달렸어 내가 원해서

응원

by 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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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달렸어 내가 원해서’라는 문구 안에 ‘응원’을 넣어봤다. 내가 원해서 매일 달리는 것 자체가, 이미 스스로를 매일 응원하는 있는 것이었다. 말속에 뜻이 숨어 있듯, 달리기 속에도 내가 미처 몰랐던 의미들이 조용히 쌓여가고 있었다. 오늘로 ‘매일 10km 달리기’ 205일째다. 토요일 아침 5시 30분, 알람이 울림과 동시에 거실로 나왔다. 창밖은 아직 어둡고, 빗소리가 조용히 유리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잠깐 망설였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이불을 걷고, 러닝화 끈을 조였다. 비가 내리면 맞으면 된다. 달리기 전부터 많은 비가 내리면 실내 러닝으로 전환하겠지만, 달리다가 중간에 비가 내린다면 어쩔 수 없이 그냥 맞는다. 달리는 데 날씨의 허락 같은 건 필요 없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비를 맞으며 달리는 일은 누가 시킨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200여 일을 내리 달렸다. 어떤 명령도, 어떤 보상도, 어떤 강제도 만들어낼 수 없다. 돈을 준다고 해서, 누군가 지켜본다고 해서, 칭찬이 기다린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직 내 안에서 올라오는 무언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처음엔 그게 의지였다. 이제는 습관이 됐다. 강력한 의지가 일상의 습관이 되는 순간, 사람은 달라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내가 한 줄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그 선이 작년 8월 15일부터 오늘까지 205개의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루하루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고작 10km, 고작 한 시간 남짓. 하지만 그 ‘고작’이 205번 쌓이면, 더 이상 고작이 아니게 된다. 어떤 날은 다리가 무거웠다. 어떤 날은 으슬으슬하니 몸살 기운이 있었다. 어떤 날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하기 싫었다. 그래도 일단 달렸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가 원했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누군가에겐 도전이고, 누군가에겐 일상이다. 나에게 달리기가 도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1km도 숨이 찼고, 10km는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완주라는 단어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달리기가 일상이 됐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계속 달렸다. 계속 달렸더니, 어느 순간 달리지 않는 날이 오히려 낯설어졌다. 달리기가 어려운 숙제에서 끼니를 챙겨 먹는 것 같은 식사로 바뀐 것이다. 없으면 허전하고 있으면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그 변화가 언제 일어났는지 그 시점을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게 진짜 습관의 증거일지 모른다. 변화는 대부분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조용한 어느 날 아침에 이미 완성되어 있다. 200일을 넘기고 나서 달라진 것이 있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괜찮아요?”가 아니라, “대단해요.”가 아니라, 그냥 진심 어린 눈으로 “무릎이나 발목이 아플까 봐 걱정됐어요.”라고, “늘 꾸준한 모습 잘 보고 있어요. 응원하고 있어요.”라고 말해준다. 숫자가 쌓이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게가 생기는 것 같다. 어느 순간 내가 ‘끈기’ 혹은 ‘꾸준함’의 캐릭터가 된 것이다. 100일엔 박수가 있었고, 200일엔 걱정이 생겼다. 걱정은 관심을 넘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온다. 누군가 나의 연속된 날들을 함께 세어주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매일 달리는 모습을 보고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잠시 멈췄다.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바로 이거다.’ 나는 그저 내가 원해서 달렸을 뿐인데, 그 모습이 누군가의 첫걸음이 된 것이다. 달리기에 대한 전문 지식도 없다. 누구를 가르친 적도 없고, 권유한 적도 없다. 그냥 매일 달렸을 뿐이다. 말보다 지속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강한 메시지가 된다는 걸, 처음으로 몸으로 이해했다.


‘응 달렸어 내가 원해서.’ 이 문장 안에 ‘응원’이 있다는 것도 오늘 달리면서 발견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나를 응원하는 방식이 달리기였고, 내가 달리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응원이 됐다. 주고받은 적 없는데, 어느새 흘러가고 있었다. 응원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었다. 매일 아침 러닝화를 신는 것도, 비를 맞으며 그냥 뛰어나가는 것도, 전부 응원이었다. 나를 향한,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를 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비가 내렸다. 그냥 맞고 달렸다. 젖은 땅을 달리면 자연스레 러닝화도 다 젖는다.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고, 젖은 양말과 러닝화는 무거워진다. 빗물이 이마를 타고 땀과 함께 흘렀다. 불편했지만 닦으면 그만이다. 오히려 선명했다. 살아 있다는 느낌, 새벽 달리기를 내가 선택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아서 달린다. 누가 뭐라 해도 바뀌지 않을 이유다. 내일도 달릴 것이다. 내일은 아내와 함께 고양하프마라톤 하프코스에 도전한다. 출발부터 완주까지 함께할 예정이다. 기록은 중요하지 않다. 함께 호흡하며, 같은 방향을 달린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을 뿐이다. 마라톤 대회 현장을 즐기고 올 예정이다. 이 또한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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