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눈 깜짝할 새에 30대가 되었다.
10대 땐 어른이 되고 싶었고,
20대 땐 곧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30대가 되고 나니, 아직도 어른이 뭔지 잘 모르겠다.
업적이라고 해봐야 별 것 없었다. 재수 6개월에 휴학 1년, 이직 2회 같은 보잘것없는 것들 뿐. 그 와중에 가짜 마리모 집사 10년 차 같은 쓸데없는 경력만 쌓였다. 내 20대와 30대를 이어주는 키워드가 다름 아닌 마리모일 줄이야.
20대 초, 일명 '예쓰'(예쁜 쓰레기)를 생일 선물로 받고 싶다고 말하고 다니는 게 내 작은 정체성 중 하나였던 시절에 '반려이끼' 마리모를 선물로 받았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마리모가, 내 주먹 두 개가 들어갈 만큼 큰 어항에 담겨 있었는데 좀 버거워 보였다. 아빠 신발을 신고 있는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달까. 그래도 1년에 1cm씩은 자란다고 하니까, 언젠가는 이 녀석이 이 어항에 걸맞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3년간 열심히 어항 물을 갈아주었더랬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 녀석이 가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충격과 배신감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 블로그에 그 에피소드를 써서 올렸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그 글을 좋아해 주셨다. 블로그뿐만이 아니라 각기 다른 커뮤니티, SNS에서도 내 글을 보고 찾아왔다는 댓글을 봤을 땐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다. 그 뒤로 1년마다 한 번씩, 블로그에 가짜 마리모의 근황을 업데이트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생각나서 다시 찾아왔다', '올해도 마리모 글을 내놔라', 같은 댓글을 볼 때마다 정말 큰 감사함을 느낀다. '예쁜 쓰레기'로 선물 받은 가짜 마리모 막시무스가 이렇게 큰 사랑을 받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그 녀석과 함께한 지도 10년을 향해가고 있다. 그 사이에 나는 20대에서 30대가 되었다. 집을 옮기고 직장을 옮기고 방황을 했다. 뭔가 그럴싸한 어른이 되기를 꿈꾸었지만 나는 내 바람만큼 그럴싸해질 수가 없었다. 때론 내가 자라지 않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모호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진짜가 되지 못한 가짜인 것 같아서, 그리고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들킬 것 같아서.
그러나 10년의 세월은 가짜에게도 그 의미를 갖게 하는 법이다. 결국 가짜 마리모에게 정이 들었듯이, 나는 가짜 어른의 삶에 정이 들어버렸다. 어항 속의 가짜 마리모처럼, 자취방 안의 가짜 어른인 나도 나의 애매모호함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자 그 가짜의 삶도 자란다는 것을 알았다. 가짜도 그 자체로 진짜였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즈음에서야 나는 마리모의 진짜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마리모는 진짜였다. 가짜라고 착각했을 뿐이었다.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그 시간 때문이야.
- 어린 왕자中
이 글은 그 애매모호한 어른의 성장기이다. 가짜 마리모와 가짜 어른의 10년간의 생존기이다. 실제로 내 블로그에 매년 하나씩 올렸던 마리모 일기와 더불어, 그 마리모와 함께했던 20대의 성장기를 시간의 흐름대로 썼다. 그러니 이 글은 마리모를 키우는 이야기가 아니다. 애초에 '마리모 키우기'만큼 빈약한 글감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자라지도 않는 이끼를 하루 종일 추적관찰하는 것만큼이나 지루한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마리모를 키우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방치하는 관계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