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헝가리어과에 갔어요?
처음에 헝가리어과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반대를 했다. 땅덩어리도 작고 인구수도 적은 나라에 가서 뭐 해 먹고살려고 하냐면서 수시 원서를 쓸 때부터 못 쓰게끔 강경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헝가리어과를 선택한 것이었다. 솔직히 나조차도 확실한 목표가 없어서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신했다. 내 삶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고. 돈을 아무리 많이 번다고 해도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살기는 싫었다. 부모님이 평생 나를 책임져줄 게 아니라면 인생의 중대한 결정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조언을 해주는 건 괜찮지만 부모님이 보는 시선과 내가 보는 시선은 다르고 생각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가 내가 원하는 미래를 나타내는 키워드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조건을 걸고 딜을 했다. 일단 헝가리어과에 지원하고 불합격하면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말이다. 엄마는 그 당시 병원 코디네이터가 잘 나간다며 전문대에 가라고 말했다. 그래서 전문대에 수시 원서를 썼고, 4년제 대학 수시 원서는 6개 중 단 2개만 썼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며 미쳤다고 말했다. “다들 6개 꽉꽉 채워서 쓰는데 너는 2개밖에 안 썼다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원하지 않는 과에 진학해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돈을 빨리 벌고 싶었다. 나의 간절함이 전해졌는지 다행히 외대 헝가리어과에 합격했고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나에게 헝가리어과에 진학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메이저 언어도 아니고 들어 본 적도 없는 과에 다닌다고 하니 궁금했을 것이다.(한국에서 헝가리어과는 한국외대가 유일하다.) 그 당시에는 헝가리에 일자리가 이렇게 많지도 않았고 잘 나갈 거라고 생각도 못 했던 때였다.
원래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어과(일명 세크)에 진학하고 싶었다. 내가 크로아티아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쓰려는 전형에서 세크가 성적 커트라인이 좀 높았다. 그래서 외대 출신의 영어 선생님께 말을 했다. “세크과를 가자니 성적이 낮아서 떨어질 것 같고, 다른 과를 가자니 딱히 원하는 과가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생님은 이렇게 조언을 해주셨다. “세크어과를 정말 가고 싶으면 세크어과에 지원하고, 그냥 외대가 가고 싶은 거면 다른 과에 안전하게 넣어라.” 생각해보니 나는 세크어과도 가고 싶지만 외대를 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했다. 그래서 성적에 맞춰서 헝가리어과에 지원하게 되었다.
나는 해외에 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언어와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찾아보니 해외문화홍보원이라는 기관이 있는데 해외에서 문화를 전파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기를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유럽 국가 중 해외문화홍보원이 있는 국가들을 찾아봤다. 그중에 헝가리가 있었고, 내가 헝가리어과에 가서 헝가리어를 할 줄 알면 좀 더 쉽게 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잘못 생각한 게 있는데 해외문화홍보원은 한국 문화를 해외에 전파하는 기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헝가리 문화를 한국인에게 전하고 싶었다. 이걸 너무 늦게 깨달아서 이 꿈은 포기했다. 어쨌든 현재는 헝가리어를 해서 내가 원하던 해외생활을 하고 있으니 만족스럽다.)
이렇게 두 가지의 큰 이유로 나는 헝가리어 전공생이 되었다.
입학할 때만 해도 헝가리에 대해 그렇게 거창한 꿈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공을 잘 살려서 나를 알리고 싶다는 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