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부다페스트 7구역에서 13구역으로 이사하는 날
오늘 시청한 영상 중 김주일(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님이 세바시에서 강연한 영상이 기억에 난다. 우리는 큰 변화만 변화라고 생각하고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갑자기 한 순간에 큰 변화를 꿈꾸기는 힘들다. 큰 변화들 사이에 본인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작고 사소한 무수한 변화들이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오히려 비슷하지만 약간 달라지는 것, 아주 사소한 변화에 더 민감하고 불편함을 느낀다. 매일 먹던 음식, 매일 가던 길이 아닌 같은 식당에서 새로운 메뉴를 주문하고 옆동네 길로 가보는 것. 이런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지고 불편함을 준다. 그렇게 우리는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한 작은 변화들이 연결되어 큰 변화를 이루게 된다.
나 또한 익숙함에 안주하고자 이전에 살던 동네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집을 찾아볼 때에도 내가 살던 동네와 그 주변만 알아보고 다른 동네는 건너뛰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른 동네로 집을 구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산다. 7구역 시내 한 중심가에 살다가 13구역으로 옮겼다. 현재 내가 사는 곳은 조용하지만 시내와 그렇게 멀지 않고 카페나 식당도 정말 많다.
작년에 7구역에 살 때, 나는 매일 먹는 음식만 먹고 가던 식당만 갔다. 또한 그 동네에서만 돌아다니면서 구글맵에 나중에 갈 식당을 저장해두었다. (결론적으로 10%도 가보지 못했다.) 아마 50군데 이상 저장해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오게 되면서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다. 오히려 좋았다. 우리 집 근처에도 브런치 카페도 많고 분위기 좋은 식당, 현지인 맛집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사를 하면서 느낀 것 중 또 하나는 구글맵에 저장되어 있는 깃발이 모두 한 곳에만 몰려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식당을 추천해달라고 해도 집 근처 외에는 아는 곳이 없어서 추천해줄 수가 없었다. 내가 헝가리에서 1년을 넘게 살았는데 이렇게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고 두려웠다.
하루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너무 집 주변에서만 놀았던 것 같아. 새로운 동네에서 살아보니 그쪽은 하나도 모르더라고. 우리가 퇴근하고 너무 지쳐서 맨날 집 앞에서만 노니까 다른 동네는 고려 대상에 들어가지도 않았었지. 우리 이제는 새로운 곳도 많이 다니고 못 해본 것도 다 하자.
그 친구도 헝가리에서 1년을 넘게 살고 있다. 그러나 헝가리에서 못 해본 게 너무 많다. 헝가리 관광 필수 코스로 유명한 뉴욕 카페도 안 가봤고, 세체니 온천도 안 가봤다. 그리고 헝가리 전통음식도 제대로 못 먹어봤다. 우리는 헝가리에 산다고 말하지만 정작 헝가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냥 헝가리에 살고 있을 뿐, 아직 헝가리에 물들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헝가리 이곳저곳을 다 다녀보자"가 내 목표였는데 계획을 세우기는커녕 목표도 잊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헝가리 즐기기> 계획을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