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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개 꺾여 추락한 신여성의 불행

-인형이 아닌 인간으로 살고자 한 화가 나혜석

by 다담

그다지 길지도 않은 52년의 생을 그녀보다 파란만장하게 보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단지 본인의 자유의지대로 살고자 한 여인의 굴곡진 삶은 시대의 관습과 질타에 여지없이 짓밟혀 결국 비참한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일제치하 사법관이었다 군수가 된 아버지를 둔 유복한 집안의 나혜석은 당대 여성의 한계를 넘어 재능을 발휘할 교육적 혜택을 받게 된다.

한국 최초의 여성 유학생, 여성 서양화가, 최초 여성 소설가, 최초 서앙화 전시회 개최 화가, 최초 세계일주한 여성, 최초 페미니스트...
이런 화려한 타이틀을 가진 여인이나 그 짐이 오히려 그녀에게 더 독이 되지 않았을까. 수많은 여성이 그저 주어진 관습을 운명인 양 받아들이고 살았지만, 잘못을 알기에 받아들일 수 없으며 본인의 의지대로, 한 인간으로 살고자 했고 그 걸과를 혹독하게 책임져야 했다.


일제강점기 당대의 시대적 한계와 달리 유복한 집안의 나혜석은 글과 그림에 재능이 탁월했고 이를 발휘할 교육적 혜택을 누리게 된다. 바로 신여성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오빠의 일본 유학을 따라 그녀도 그림 공부를 하게 되고 예술적 정서를 교감하면서 시인이었던 최승구와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가 원하지 않은 결혼이었다 해도 고국에 이미 부인이 있는 유부남이었고 이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미 혜석은 어린시절부터 첩을 여럿 두고도 당당히 어머니를 홀대한 아버지 탓에 어머니의 고충을 보고 자랐었다. 그러나 큐피트의 장난인지 그녀 자신이 첩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되고 그럼에도 지키고 싶은 첫사랑의 그는 먼저 간 고국에서 병사한다.

그 절망을 이겨내고자 그림에 매진하고 상당한 인정도 받았며 두각을 드러낸다. 그러나 운명은 그녀에게 가혹했고 만세운동 참여로 수감된다.

그녀의 담당 변호사였던 김우영의 구애에 결국 마음을 열고 결혼까지 한다. 그러나 화가로서 더이상 진전이 없는 그림에 회의를 느낄 때 남편과 세계일주를 떠나게 되고 프랑스 등 유럽의 예술은 그녀에게 다시 예술의 혼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주목받은 동양의 예쁜 여인 그녀에게 구애한 이가 있으니 남편 친구 최린이었다. 또다시 어긋난 사랑의 시작이었고 그저 감정에만 충실한 선택이었다. 결국 그 혹독한 대가는 허락되지 않는 사랑을 한 그녀에게만 가해졌다. 남편 김우영게게 쓴 <이혼고백서>를 당당히 잡지에 발표하기도 하고 최린을 상대로 정조유린을 이유로 위자료 소송을 걸며 여성에게만 요구하는 정조 개념을 한 인간으로서 개인의지라 주장했으나 더욱 거센 질타를 받을 뿐이었다.


그 후 그녀의 삶은 파국을 치닫게 되고 철저히 버려져 몸도 마음도 찢겨 추락하게 된다. 남편은 물론 자식에게까지 버림받은 그녀는 몸도 마음도 다쳐 온 세월을 한꺼번에 받은 늙고 병든 한 여인에 불과했다. 정신병원과 양로원을 전전하다 결국 1948년 52세의 그녀는 서울 한 거리에서 쓸쓸히 쓰러지고 무연고 행려병자로 시립병원 자혜원에 옮겨져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파란만장한 삶이 또 있을까.


유달리 여성에게만 강요되었던 도덕적 잣대와 차가운 질타, 그 속에서 한 인간으로 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으려 한 가녀린 여인의 자유의지와 비극적 종말. 결코 아버지의, 남편의 인형이 되기를 거부한 나혜석이란 인간적 삶의 무게가 묵직하니 가슴에 와 가라앉는 느낌이다.
제비처럼 나비처럼 살고자 한, 시대를 앞서간 그녀가 그래도 본인의 선택을 끝까지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녀의 고향 수원에 위치한 나혜석 거리를 다시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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