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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외사랑 시인 소동파

깊은 밤 다시 읽는 소동파

by 다담

괜스레 잠 못드는 밤 생각나는 시 한 편이 있다.

괜스레 마시지도 못하는 술 한잔이 생각나고

괜스레 옆에서 수다라도 떨어줄 친구가 그리운 밤.


有客無酒 유객무주 : 나그네는 있으나 술이 없고

有酒無肴 유주무효 : 술은 있으나 안주가 없네

月白风淸 월백풍청 : 달 밝고 바람 맑으니

如此良夜何 여차량야하 : 이러한 어느 깊은 밤

-소동파


소동파 - 소식(1036~1106) 북송의 대표적 시인 당송팔대가 중 한 사람


부유한 지식인 집안에서 태어나 22세 과거 진사 급제했으나 모친상을 당한다. 상경 얼마 후 다시 아내 부친상 치르느라 낙향 등 분주하게 보낸다. 33세 본격적으로 궁정 사무직으로 관직 시작. 급진파 실세 왕안석과 대립 한직을 떠돌게 된다. 지방을 떠도는 고달픈 삶을 살았으나 문학적 재능을 꽃피우는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 65세 병으로 사망까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유배 생활로 보냈다.


그는 시, 사(詞), 산문, 부(賦) 등 여러 장르에 모두 뛰어났다. 소동파의 시문에는 장강대하(長江大河)같은 호방한 기세와 삼라만상이 다 들어가 있는 풍부한 내용, 독특한 예술의 품격이 잘 드러나 있다.


소동파의 산문은 모두 4,000여 편으로, 고려, 조선시대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준 중국문인 중의 한 사람이다. 고려시대에는 김부식, 이규보, 이색, 이제현 등 당대 일류문인들은 물론, 신진 과거합격자까지를 포함해 다수의 지식인층들이 소동파 배우기로 일세를 풍미하기까지 했다.


이규보는 소동파의 문장은 금은보화가 가득찬 부잣집같다며 극찬했다.

이제현 역시 소동파 가문의 3명, 소순(부) 소철(동생) 소식을 가리켜 천리마와 봉황같다며 그의 집안을 기렸다.

김부식 부 김근은 두 아들 이름을 소철 형제 이름을 따서 부식, 부철로 지을 정도였다. 고려 시대는 소동파로 대표되는 송류가 풍미했다.


누구나 소동파를 알지만 아무도 소동파를 모른다’는 말처럼 제대로 알기 어려운 소동파의 문학을 대상으로 삼는 ‘소동파학’ 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다. 중국뿐 아니라 고려 문인들도 소동파의 학문과 문장을 모범으로 삼을 만큼 그의 문학은 고려와 조선에서도 폭넓게 읽히며 확산됐다.


소동파는 기본적으로 유교사상에 뿌리를 둔 현실참여주의자로서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구제해야 한다는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이 매우 투철했다.

소동파는 워낙 다정다감한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백성에 대한 연민의 정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인간적 애정과 관심도 유난히 깊었다. 그의 미식가적 식도락은 동파육이란 에뉴로 당대 즐기지 않던 돼지고기의 참맛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 불교사상과 도교사상에서 비롯된 현실도피적 사고방식도 동시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물질세계의 허무성과 무가치성을 간파하고 물질세계 바깥에서 노닐려는 초월적 인생관도 지니고 있었으며, 그 결과로 자연을 매우 사랑했고 나아가 그 자신이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세속적인 가치에 대해 초연할 수 있었기에 그는 온갖 정치적 핍박 속에서 자신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조차 못하고 일생의 대부분을 유배 생활과 지방관 생활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긍정적인 태도로 지닐 수 있었다. 이러한 그의 삶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그의 시에 반영되어 있음은 당연하다.


'구소수간'(歐蘇手簡)은 중국 북송의 대문호로 알려진 구양수와 소동파가 쓴 편지를 엮은 책으로 세종대왕이 수 백 번이나 탐독한 책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구양수의 편지글 '여릉 상하'와 소동파의 편지글 '동파 상하'로 구성돼 있다. 세종은 잠저(潛邸)에 있을 때부터 '구소수간'을 애독했다. 왕이 되기 전 사가에 머물던 잠저의 시기, 청년 세종이 병석에서도 이 책을 수십번 탐독했다. 왕이 될 운명이 아니니 시화나 읽으며 인생을 즐기라는 아버지 태종의 말이 있으나, 충녕 세종은 손에서 책을 놓치 않았다 한다. 이를 염려한 태종의 세종 방 안의 모든 책을 다 치우게 했을 시 병풍 뒤 한 권 숨긴 책이 있었으니, 그 책이 <구소수간>이라 하며 이를 천백 번이나 탐독했다고 전해진다. 세종의 무한 반복 독서법을 가능하게 했던 책이다.


'구소수간'은 동아시아 서간문의 정수로 평가되며 고려시대 부터 유학자들에겐 필수 교양서였다. 구양수와 소동파는 물 흐르는 듯 시원스럽게 글을 썼으며 짧게 쓴 문장이더라도 뜻과 이치를 담았다. 때로는 늙어 병드는 것을 탄식하였고, 때로는 유배지의 외로움을 토로하고, 때로는 늙어 병드는 것을 탄식했으나, 언제나 그들의 글은 진솔하고 간명했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인 구양수는 과거 시험 총책임자로 '당송팔대가' 중 송대의 선구자이다. 그가 주관했던 과거시험 1등 주인공이 소동파였다. 구양수와 소동파는 이후 평생 스승과 제자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책 내용의 주류를 이루는 편지는 누군가에게 읽으라고 남기는 글이다. 그래서 자기 생각을 잘 전달하기 위해 간결하고 분명하게 쓰여진다. 이 두 사람의 생애는 우리나라 고려시대와 맞물려 있어 그 글들은 조선왕조 내내 최고 문장으로 추앙을 받았다.


폐허의 시학 - 다사다난했던 본인의 삶 영향일까. 그의 사상의 기조는 '세상 만물의 본질로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진리를 담고 있다. 또한 인생은 본질적으로 고독하다는 그의 감수성이 작품에 잘 드러나난다. 쓸쓸한 이 가을에 잘 어울리는 그의 시를 감상해 보시길.


어쩔 수 없는 고질적인 중화사상가로 그는 폄한의 원류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고려인들을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오랑캐'라 했으며 오랑캐는 중국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다스릴 수 없다고 했단다. 고려사절단을 대접하는데 드는 인적 물적 비용이 어마어마했다 하고 이로 백성들의 고충이 컸기에 나온 발상이라기엔 외교적 관점에서 지나치기도 하다. 온전히 본국만 생각한 편협한 시각이라 여기나 그 정도로 우리나라 고려를 염두에 두고 강력 경쟁 대상으로 여긴 건 아닌가 생각도 해 본다.


#소동파 #구소수간 #한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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