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만큼 결과를 얻지 못해 좌절하는 너에게
-최선이 최고의 보상을 주지는 않아도
그래도 나아가 보자꾸나.
조금은 실패에 익숙해지자꾸나.
한 인생을 통틀어 성공의 경험보다는 실패의 경험이 더 많은 삶이 평범하지 않겠니. 이 세상에 성공한 이는 소수이나 실패한 사람들은 차고 넘치니까. 소수의 성공한 이들의 성공 스토리가 종종 언론으로 공개돼 마치 누구나 따라하면 그처럼 성공할 것같은 기대감을 주지. 저이도 처음엔 나처럼 퍽퍽한 삶에 좌절한 이였는데, 가진 것 없는 바닥 인생에 좌절도 했는데 지금은 저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네. 나도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하지. 그들의 스토리는 어느새 상품이 되어 여기저기 광고로 꾸며져 성공을 바라는 이들을 현혹한단다. 얼마 안되는 값으로 성공스토리를 공유하게 하고 곧이어 남부러워할 성공을 누릴 수 있다고 현혹한단다. 판단은 오롯이 소비자 몫이나 삶이 힘들고 실패에 익숙한 이들은 쉽게 흔들리지. 그렇게 그들은 또 성공하고 그를 '무작정' 따라한 이는 실패하고 말아. 실패한 이로서는 참 안타까운 악순환이라고 할까. 늘 광고의 상대의 약점을 후벼파고든단다.
"광고에 속은 니 잘못이지. 성공하는 사람들은 타고나는 거야.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지. 태생부터 그치들은 다른거야."
실패에 좌절한 이들에게 이런 말이 위로가 되겠니? 너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진 않아. 너의 노력을 옆에서 지켜 보았으니까. 네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아.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노력의 양을 그 누가 알겠니? 단지 때가 오지 않았다고, 꽃 필 시기가 아직 되지 않았다고 말할래.
물론 때가 되었다고 그저 성공하진 않아. 천지가 따스한 기운으로 감싼다고 그저 싹이 돋겠니? 언 땅 아래에서 뚫고 나오려고, 솟아나려고 얼마나 두드리고 두드렸을까. 온도와 적정 시간만 주어진다고 그저 알에서 병아리가 깨고 나오겠니? 그 작은 부리로 껍질을 얼마나 쪼고 또 쪼았겠니? 그 수많은 실패의 연속인 도전이 결국 세상과 만나게 했을거야.
그러니 긴 인생 시간 속에서 하고자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똑오똑 다시 시작하는 이들이 결국 남 부러워하는 성공의 길에 들어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하니 지금 네 위치가 네 인생의 최종 위치는 아닐지니 현재의 실패를 두려워말자. 먹 같은 어둠 속에서 뻗은 내 손조차 보이지 않을 때도 저 너머 빛은 너를 향해 오고 있단다.
사람들은 성공의 강렬함과 희열이 더 각인되어 있어서 잘 기억하고 있고, 실패는 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잊고자 할 뿐이란다. 네가 처음 자전거를 배웠을 때를 생각해보렴. 그 두려움과 불안감과 함께 수많이 넘어져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지. 무릎이 까이고 피가 나기도 했지만, 지금 넌 마치 처음부터 자전거를 잘 탔던 것 마냥 자전거를 달리는 순간의 희열이 더 기억하지?
중요한 것은 수 없이 겪은 그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일거야. 실패를 치욕으로 생각하고 부끄러워하며 스스로의 능력 부족으로 판단하여 지금까지 쌓아 온 경험들을 무로 돌리듯 멈춰버리는 건 너무 아깝잖아. 또 다른 성공으로의 경험치를 하나 더 쌓았다 여기며 다시 시작하는 발판으로 여겨보는 건 어때. 결국은 꾸준히 해나가는 일이 결과물로 나타낼 것이며 이는 때론 경제적인 보상이든 명예로운 자리로든 보상을 하기도 하니까. 혹여 어느 것도 아닐 수 있으나 그 또한 그만큼의 경험을 하는 동안 스스로 느낀 만족과 희열 자체로도 보상이 되지 않을까.
그러니, 한두 번의 실패라는 멍에로 멈추지는 말자.
노력한다고 모두 성공하진 않아. 너의 최선이 항상 최고의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아. 하지만 최고의 성과를 얻은 이들은 항상 최선을 다했고. 성공한 이 중 노력하지 않은 이는 없단다.
#노력 #보상 #위로 #좌절 #최선 #최고 #성공과_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