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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주리 Mar 26. 2021

전업주부는 대체 얼마를 벌까?

주양육자와 전업주부의 노동을 돈으로 환산해보았다

전업주부의 노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라는 기사를 한 번도 클릭하지 않은 전업주부는 없으리라 확신한다. 하루 종일 일을 하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자신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집에서 편히 노는 여자라고 생각할 때마다 속이 뒤집어진다. 그래서 이런 제목의 기사를 볼 때마다 열심히 눈팅을 한다. ‘그래, 내 노동에도 분명 가치가 있어! 나도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사람이야! 나도 떳떳해!’ 하지만 기사의 대부분은 비현실적인 수치의 나열일 뿐,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내가 직접 정리해봤다. 과연 전업주부와 주양육자의 노동의 가치는 얼마일까? 우리는 대체 얼마는 벌고 있는 걸까?

 


나는 현재 36살의 전업주부이고, 어린이집에 다니는 3살 아이가 한 명 있다. 남편은 오전 740분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하는 비교적 친 가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일 저녁과 주말에는 세 가족이 함께 지내고 평등하게 집안일과 육아를 나눠서 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주말의 노동은 제외하고, 전업주부이자 주양육자로 지내는 평일의 노동 만을 가치로 환산해보았다.


뭐야, 남편이 일찍 퇴근하고 집안일도 육아도 잘 도와주는구먼? 나는 매일 독박 육아인데? 이 정도가 뭐가 힘들다고 징징대? 나는 더 힘든데??’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적이나 비교 대상이 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전업주부이자 주양육자의 노동을 정당한 가치로 환산하고 그 결과를 세상에 떳떳이 발표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비교하고 탓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그렇기에 정확한 수치와 내 삶을 걸고 실험하고 주장하는 방법을 택했다.



전업주부+주양육자의 24시간


1) 오전 7~ 945분 기상 및 등원

아이 기저귀를 갈고, 일어나자마자 내 다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아이를 한 손에 안은 채로 아침밥을 차린다. 밥 달래서 기껏 차려 주니 안 먹고 바나나를 달란다. 온 주방에 다 흘리고 바나나를 먹은 아이의 손을 잡고 얼른 양치와 세수를 시킨다. 옷을 갈아입히고 양말까지 신기는 데 약 30분이 소요된다. 중간중간 ‘이거 싫어!!’라고 외치는 아이를 달래는 감정 노동도 당연히 포함이다. 아이 준비를 마치면 아침 식사 자리를 정리하고, 대충 내 몸을 씻는다. 아침 2시간 사이에 폭탄을 맞은 것 같은 집을 간단히 정리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안 가겠다며 우는 아이를 온갖 방법으로 달래서 등원을 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면 9시 45분. 분명 정리를 한다고 했는데 여전히 더럽다.


2) 10시 ~ 12시 매일 해야 하는 집안일

집안에 널려있는 장난감을 다시 상자에 넣고, 식탁 밑에 떨어져 있는 으깨진 바나나를 닦고, 여기저기 산처럼 솟아있는 벗어놓은 옷들을 세탁기에 돌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물 걸레질을 한다. 각 방마다 가득 차 있는 쓰레기통을 하나에 모으고, 꽉 눌러서 야무지게 매듭을 묶는다.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 인터넷이나 오프라인으로 장을 본다. 식료품만 아니라 생필품도 주기적으로 재고를 체크해서 채워 넣는다. 다 돌아간 빨래를 건조기에 돌리고, 어젯밤에 건조기에 넣어놓은 빨래를 꺼내 차곡차곡 갠다. 옷장에 옷들을 정리한 뒤 환기를 위해 열어 놓은 창문을 닫으면 오늘의 오전 집안일이 일단 끝난다.


3) 12시 ~ 2시 점심시간 및 휴식 시간

냉장고에 있는 반찬으로 점심을 해결하거나 가끔은 배달∙외식을 한다. 친구들과 커피 타임을 가지기도 한다. 3시 30분 하원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와야 하므로 이 시간은 1시간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혹은 오전의 집안일 타임과 바꿔 운동이나 취미를 즐기기도 한다.


4) 2시 ~ 3시 30분 육아 관련 일 & 대기하는 시간

주로 육아와 관련된 일 처리를 한다. 장난감 도서관에 방문해서 장난감을 대여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고, 인터넷 쇼핑을 통해 육아 용품을 구입하거나 팔고, 계절에 맞는 옷을 구입한다. 하원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에 마음이 상당히 후달리는 관계로 생산적인 일을 하기는 힘든 시간이다. 이 시간은 그저 대기하는 시간이다.


5) 3시 30분 ~ 6시 아이와 놀기

아이와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산책을 하고, 가끔은 같이 마트나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날씨가 좋으면 놀이터에서 두 시간 동안 미끄럼틀을 타기도 한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히고 놀이 2차전이 시작된다. 책을 20권 정도 읽어주고, 꼭꼭 숨어라를 10번 정도 반복하고, 뽀로로 인형 놀이를 30분 정도 하다 보면 남편이 퇴근한다. 그쯤 목에서 쉰 소리가 난다.


6) 6시 ~ 9시 저녁 식사 및 밤잠 준비

퇴근한 남편이 아이를 돌보는 동안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중간중간 “엄마~~”하며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아이를 떼어 내거나 달래며 주방 일을 한다. 식탁 오른쪽왼쪽위아래를 넘나들며 밥을 온몸으로 먹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이 목욕을 시킨다. 오늘 내가 목욕을 시키면 남편이 주방 정리를 하고, 내일은 서로 역할을 바꾼다(앞서 말하듯이 주방 정리가 훠얼씬 쉬운 일이다) 깨끗하게 씻고 나온 아이와 다시 20분 정도 인형 놀이를 하고 나면 드디어 밤잠을 재울 시간이다. 아이 옆에 누워 책을 3권 정도 읽어주고 토닥여주고 노래를 부르며 재운다.


7) 9시 ~ 9시 30분 끝난 줄 알았죠?

끝나지 않았다. 아이를 재우고 방문을 닫고 나오면 또다시 초토화된 집을 정리해야 한다. 분명 오늘 청소기를 돌렸는데 이 시간이 되면 집이 또 더러워진다. 장난감과 책을 정리하고, 다 돌아간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매트 위를 닦는다. 9시 30분. 드디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정리하면 하루 평균 12시간을 주양육자와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그중 3시간 정도는 전업주부의 일이고, 나머지 9시간이 주양육자의 일이다. 2021년 대한민국 기준으로 위 노동의 임금을 환산해보면 아래와 같다.


▷ 전업주부(집안일)

가사도우미 앱 ‘미소’를 기준으로 보면 집안일 3시간에 40,000원을 지불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 달을 평일 22일로 봤을 때 40,000원 X 22일 = 880,000원이다.


▷ 주양육자(돌봄)

정부에서 운영하는 ‘아이 돌봄 서비스’를 기준으로 보면 아이 돌봄 1명 기준으로 1시간에 10,040원을 지불해야 한다. 이 안에는 준비된 식사 및 간식 챙겨 주기는 포함되지만 아이가 먹은 식기 설거지는 포함되지 않는다(가사 활동은 일절 제외라는 뜻이다) 즉, 하루 9시간의 돌봄을 외주 하면 하루 90,360원을 지불해야 한다. 위와 같이 한 달을 평일 22일로 봤을 때 90,360원 X 22일 = 1,987,920원이다.


나의 하루 12시간의 노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한 달 동안 집안일 88만 원, 육아 198만 원 도합 286만 원을 버는 셈이다. 


물론 육아 9시간 안에 남편의 육아도 포함된다. ‘그럼 그 시간은 까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육아를 담당해 줄 도우미를 구해본 사람은 안다. ‘오전에 2시간, 오후에 2시간만 봐주시면 되는데 왜 한 달에 150만 원을 달라고 하세요?? 한 시간에 만원씩 하면 88만 원이구먼??’ 이렇게 말하면 절대로 도우미를 모실 수 없다. 주양육자의 노동은 대기하는 시간을 포함하는 ‘종일에 걸친 육체+정신노동’이기 때문에 원하는 시간에만 딱 외주 할 수 있는 그런 형태가 아니다. 그렇기에 하루 9시간의 돌봄 노동을 나의 정당한 노동으로 말할 수 있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 쉽다.

“남들 다 하는 일에 뭘 그리 유난 떠냐?”

유난 떨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현 상황에 불만이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의 노동에 대한 가치를 눈에 보이는 숫자, 즉 돈으로 환산하여 정확히 내밀지 않으면 전업주부의 노동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야 이 세상이 ‘가장 편하게 잘’ 굴러가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화려한 모습을 떠받치고 있는 3대 요소로 여성, 자연, 식민지를 꼽는다. … 성별 분업은 전근대 문화의 잔여물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 남성이 가족 임금을 벌어오는 노동자 역할을 맡고 여성이 그런 남성 노동자를 무상으로 재생산하는 역할을 맡아야만 자본이 값싼 노동력으로 대량의 이윤창출을 이루어낼 수 있다. … 여성은 남성 노동자를 무보수로 재생산해줌으로써 기업의 생산 비용 절감을 도와주고, 집에서 전문 살림꾼으로 기업이 만들어 낸 상품의 소비자로 활약하면서 자본주의의 전천후 조력자로 기능한다. 이렇듯 성별 분업은 전근대의 잔재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본질 그 자체이다. (<당신이 집에 논다는 거짓말/정은아> 중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마리아 미즈> 내용을 언급하며, 137~138쪽)



 우리는 집에서 놀지 않는다. 하루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군말 없이(물론 가끔은 투정하며) 해내고 있다. 아무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스스로는 알아야 한다. 나는 지금 무지하게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떳떳해도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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