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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주리 Mar 08. 2021

아빠는 왜 '주' 양육자가 될 수 없을까

전업주부의 엄마휴직 선언 #1




36세 부인. 전 프리랜서, 현 전업주부 + 주양육자

36세 남편. 전 교사, 현 교사 + 부양육자

 



남편은 완벽한 ‘아빠’였다. 저녁 6시, 퇴근과 동시에 육아 출근을 하며 하루를 48시간처럼 쪼개서 살았다. 직장에서 입었던 옷도 다 갈아입지 못한 채로 아이를 안고 어르고 달래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혼자 천천히 밥을 음미하는 식의 이기적인 습관은 당연히 없었다. 남편, 나, 아이가 함께 앉아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신없는 식사를 하는 매일이 반복됐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저녁이 없는 삶’은 우리 가족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매일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저녁이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하루 씩 번갈아 가면서 주방 정리와 아이 목욕을 담당했다. 정신없는 저녁 식사로 초토화가 된 주방을 정리하는 것이 아이와 목욕하는 것 보다 쉬운 일이었기에, 남편과 나는 매일 오늘의 할 일이 ‘주방 정리’이길 바랐다. 목욕을 마치면 30~40분 정도 거실에서 놀다가 책 3권을 가지고 아이 방으로 함께 들어간다. 그 책들을 다 읽고 다시 2권 정도를 더 읽어주면 그제야 아이는 자기 자리에 누워서 밤잠을 청할 준비를 마친다.

 

이보다 더 완벽한 아빠가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남편은 최선을 다 해 육아를 함께 했다. 하지만 그는 주양육자는 아니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 내는 아빠였지만, 육아를 주도적으로 이끄는 주양육자는 아니었다. 남편은 이 표현을 굉장히 싫어했다.


나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
다른 남자들은 이렇게도 안 하더라.
그렇게 말하면 나 정말 억울해.

주양육자라는 표현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부 중 한 사람에게 억울함을 준다니, 별로 바람직한 표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양육에 ‘주’와 ‘부’가 어디 있어. 두 사람이 마음 합쳐 함께하는거지.’ 이렇게 생각하며 한 해, 두 해를 보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계속 찝찝함이 남아있었다. 명쾌하게 답을 내리지 못한 문제에 대한 찝찝함.  


 

정말 그럴까? 양육에 있어 ‘주’와 ‘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까? 남편은 밖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사람이니 당연히 평생을 부양육자로 사는 것이고, 나는 집안일과 육아를 담당하는 사람이니 평생을 주양육자로 사는 것이 정당한걸까?

 

산부인과로 시작해 산후조리원, 산모 도우미 업체 선정까지 이어진 육아의 ‘선택’들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선택의 폭은 더 넓어졌고, 쏟아지는 정보의 양은 더 방대해졌다. 수많은 정보 중 아이에게 최선의 선택을 찾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더 큰 정신적 노동이었다. 게다가 찾아낸 정보들이 최선이라고 해서 아이에게 언제나 잘 맞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10가지 선택을 하면 4개 정도는 완전 실패했고, 3개 정도는 평균치만큼 성공했고, 나머지 3개는 언제 선택했냐는 듯이 모두가 까먹고 살았다. 아이 옷과 신발은 브랜드마다 사이즈가 다 다르다는 것은 육아를 하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눈이 빨개지도록 후기를 검색해서 선택한 육아용품들은 대부분 본전도 찾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기 일쑤였다. 나가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돈을 의미 없이 까먹기나 하다니.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양육에 들어가는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고자 아이의 책은 중고나 도서관을 주로 이용했다. ‘두 돌 아기 전집’이라는 키워드로 얼마나 많은 검색 질을 했던가! 만원 더 저렴한 중고 물건을 찾으려고 일주일 간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나를 보며 이번엔 자괴감이 들었다.


동네 도서관에서는 1인 5권을 대출할 수 있다. 가족 회원으로 가입하면 나 혼자 방문해도 아이와 남편의 몫까지 15권을 대출할 수 있다는 말에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이 직접 도서관에 방문해서 회원 가입하면

지금보다 책을 더 많이 대출할 수 있대.

주말에 같이 가서 가입하자.”


이 말을 약 7번 정도 반복한 후에야 남편은 몇 개월 만에 도서관에 방문해서 회원 가입을 했다. 만약 남편이 주양육자였대도 도서관 회원 가입을 이렇게 몇 개월이나 미루고 미뤄서 겨우 했을까? 2주에 한 번 방문해서 5권이 아니라 15권을 대출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장점인지, 책을 빨리 읽는 아이에게 얼마나 좋은 장점이 되는지 남편은 정말 몰랐던 걸까 아니면 내 일이 아니니까 자꾸 우선순위에서 밀렸던걸까. 나의 닦달에 지치고 지쳐 겨우 회원 가입을 마치고 온 남편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주양육자가 되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육아를 하며 나만 종종 거리는 이런 상황이 완전히 바뀔 수 있을까?’

 

남편과 나의 직업적 상태를 바꿔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내가 밖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번다면 남편은 집에서 집안일을 하고 육아를 담당하며 주양육자가 될 수 있을까? 내가 했던 모든 고민과 선택들을 남편도 똑같이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남편이 육아 휴직을 할 수 있는 정규직이 되자마자 나는 소리쳤다.



정말 잘됐다!! 잘했어!!! 축하해!!!
이제 당신도 육아 휴직 할 수 있는거지?
나도 나가서 일 해도 되는거지?


 오랜 시간 준비했던 정규직 시험에 합격한 남편에게 할 말이 이것밖에 없냐 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했던 말이 이랬다. 나에게 남편의 정규직이란 ‘육아휴직 가능한 상태가 된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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