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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주리 Mar 29. 2021

내가 전업주부가 된 이유

엄마가 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내 소개를 간단히 해볼까 한다. 대학에서 특수 교육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아동청소년연극을 공부했다. 극단 <아주 특별한 예술마을>의 대표로 발달장애아동청소년을 위한 공연을 제작하고, 특수학급·특수학교·복지관 등 다양한 기관에서 프리랜서 연극 강사로 수업을 진행한다. 동시에 네이버 블로그 <사랑에 장애가 있나요?>와 유튜브 <항승주리>를 운영하는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2021년 3월에는 블로그 명과 동명의 에세이도 출간했다. 주말에는 월 1회 정도 결혼식 사회자로 활동한다. 


굉장히 온화한 척 책 홍보 사진을 찍어보았다


자, 여기까지 쓰는데 꽤 오래 걸렸다. 정리하다 보니 내가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고 느껴진다. 심지어 여기에 주부+주양육자도 추가된다. 내 직업을 전업주부라고 쓰려고 했는데 그러기에는 이미 다른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기에 ‘전업’ 주부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를 뭐라고 칭해야 할까? 프리랜서 주부 엄마?! 이게 도대체 무슨 뜻 이래? 써놓고도 이상하다. 여성들은 아이를 키우며 주부가 되는 시기에 상당한 직업적 혼란을 느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전업주부’라고 하자니 간헐적이지만 지금 하고 있는 ‘내 일’들이 단순히 취미로 하는 건가 느껴져서 억울함이 들고, ‘프리랜서’라고 하기엔 주양육자 일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기에 일의 양과 결과물이 영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내 직업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냥 용돈 벌이지, 뭐.
소소하게 반찬 값 벌려고 하는 거야.


규모에 상관없이 주부와 양육자 외에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의 일, 작업물에 대해 소개할 때 이런 말들을 꼭 덧붙였다. 내가 보기엔 그 자체로 훌륭하고 완성도 있는 일들이었는데, 다들 어찌 된 일인지 스스로의 작업에 대해 소개할 때면 모두 손사래를 치며 ‘그냥 취미 삼아 하는 거야~’라고 급하게 마무리를 했다. 나는 내 작업물과 일에 대해 스스로 평가 절하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아이가 없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임한다. 설사 노력 대비 결과물이 형편없을지라도, 수익이 너무 적어 반찬 값도 되지 않을지라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진지 병 말기의 프리랜서 주부 엄마인 나조차도 엄마 역할과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 유튜브 광고 의외를 받아 5분가량의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최소 10시간 정도의 몰입이 필요한데 아이를 키우며 이 10시간을 며칠 동안 쪼개고 쪼개서 확보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광고 물품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사용하는데 2시간, 영상 기획 및 스크립트를 짜는 데 1시간, 촬영하는 데 2시간, 편집하는 데 2시간,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최종 완성까지 2시간, 업로드 및 관리가 1시간. 최소 10시간 동안 집중해야 하는데 아이는 그런 나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한 손으로 아이를 달래며 겨우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 통화를 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의뢰인과 소통을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대부분의 의뢰인들은 오후 3시에서 6시 사이에 연락을 주었다. 아이는 옆에서 자기랑 놀아달라고 배를 까고 울고, 전화기 너머로는 의뢰인의 피드백을 들으며 며칠을 보내면 드디어 영상 업로드 완료! 이렇게 10시간을 일하고 40~50만 원 정도의 제작비를 받는다. 그렇다면 이것은 나의 커피 값인가 아니면 우리 가족의 반찬값인가. 이 전체 과정을 나의 직업으로 볼 수 있는가? 아니면 정말 순수하게 용돈 벌이 알바인가?


스스로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이유는 나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의 정체성이 엄마인지, 크리에이터인지, 엄마인지 연극 강사인지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가 없다. 내가 만약 회사에 출근하는 직장인이었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적어도 이름과 직함이 쓰여진 ID카드가 목에 걸려 있을 테니 말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고자 명함에 “결혼식 사회자, 연극 강사, 크리에이터(콘텐츠 제작자)”를 써넣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명함을 건넬 일은 오직 결혼식 사회자로 일할 때 밖에 없었다. 동네 엄마들과 어린이집 앞에서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안녕하세요. 결혼식 사회자이자 연극 강사, 크리에이터로 일하고 있고 동시에 설이의 엄마이자 집안일을 맡고 있는 권주리입니다.”라고 나를 소개하고 명함을 건넨다면? 다음날부터 어린이집 100m 앞에서 나를 보면 다들 멀찌감치 길을 돌아 등원을 하겠지. 



주부와 엄마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권주리’에 대해 이렇게 길고 긴 글을 쓴 적이 있던가? 엄마가 된 최근 3년 안에는 한 번도 없었다. 어쩐지 마음 한쪽이 짠해진다. 스스로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이렇게나 일을 하며 살고 싶어 하는데 주부인 채로, 엄마인 채로 스스로의 욕망과 출세욕을 감추고 살아야 한다니. 더 나아갈 수 있는데, 더 달려갈 수 있는데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발목을 잡고 한 자리에 묶어둔 느낌이다. 


아무도 나에게 ‘전업주부+주양육자가 되란 말이닷!!!!’라고 협박하지 않았다. 남편과 나의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아왔다. 육아휴직이 없는 프리랜서라는 직업, 어린이집 외에는 돌봄을 맡길 곳이 없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나를 전업주부로 만들었다. 

하지만 점점 의심이 든다. 정말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나? 나 스스로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주양육자 프리랜서가 되겠다고 한 걸음 물러선 것이 아닐까? 겉으로는 페미니스트라고 외치면서 속으로는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공식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던 게 아닐까. 글을 쓰며 차근차근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위의 질문에 대해 ‘절대 아니다’라고 말할 수가 없어졌다. 내 안의 가부장제가 나를 스스로 안사람의 역할을 차지하게 만들었다. 찰나의 의심은 있었지만 행동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하나 씩 행동해보려 한다. 

“남편! 내년엔 육아 휴직을 쓰자. 내가 밖에서 일할게. 당신은 집에서 일하는 게 어때?”


어? 어? 어?.. 그, 그, 그... 그래!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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