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육아휴직, 나의 돈벌이, 육아. 무엇이 문제인가?
*독박 육아 : 배우자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어린아이를 기르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네이버 국어사전)
정의로만 따지면 나는 독박 육아를 하진 않았다. 남편이 오후 6시면 어김없이 퇴근을 하고 주말에는 같이 육아를 했으니 엄밀히 따지면 혼자만의 독박 육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가 일어나는 새벽 6시부터 남편의 퇴근 시간인 오후 6시까지, 12시간 동안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로 집 안에서 혼자 육아를 하는 것은 이것이 독박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힘들고 벅찼다. ‘힘들어 죽겠어~ 아기가 잠을 안 자~’ 우는 소리를 하며 달려갈 친정이 없었고,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주말에 잠시 아이를 맡기고 커피 한 잔을 할 시가가 없었다. 친정, 시가 둘 다 있었지만 너무 멀었고 이미 양가 부모님들은 우리 아기가 아니라도 각자의 짐이 있었기에 도와달라고 요청을 할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나는 혼자 육아 우울증에 걸려 아이를 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아파트 창 밖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라고 써야 할 것 같지만 사실 그러지 않았다. 정부지원 산후도우미님이 철수하시고 난 뒤, 두 달 정도 아이와 둘이 낮시간을 보내보니 이것은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과업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부모님, 형제자매, 친구들이 없으니 돈을 써서라도, 아주 적은 시간이라도 육아 외주를 맡겨야 한다는 명쾌한 나의 결론에 남편도 동의했다. 곧바로 정부지원 아이 돌봄 서비스를 신청했고 장애인 가정이었던 우리는 감사하게도 곧바로 정부지원 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가 5개월이 됐을 때부터 일주일에 3회, 하루 3시간씩 돌봄 선생님을 모셨다. 그 사이 나는 출산 후 처음으로 혼자 외출을 했다. 모유수유 중이었기에 흘러나오는 모유를 닦으며 발레를 다녔고, 햇살을 받으며 혼자 카페에 앉아 멍 때리는 시간을 가졌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까지 치면 3시간이 정말 짧았지만 그 자체로 인생에 큰 활력소를 얻은 느낌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어린 아기를 어떻게 남의 손에 맡기냐고, 요즘 무서운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고 나에게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지만 내 대답은 이랬다.
그럼 직접 저희 집에 오셔서
아이 좀 봐주실래요? 저 숨 좀 쉬고 올게요.
육아 우울증에 걸려 가족 모두를 괴롭게 하느니 잠깐이라도 돌봄 외주를 맡기고 내 정신을 가다듬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일 년 정도 돌봄 선생님과 함께 육아를 했고 아이가 16개월이 됐을 때부터는 동네 가정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내 갑상선에 큰 혹이 생겨서 제거 수술을 받아야 했기에 예상보다 조금 이른 어린이집 입소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글로 정리하니 더 수월해 보이는 나의 육아. 그래, 인정하자. 나의 육아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가끔은 외롭고 지쳤지만 그건 육아를 하는 주양육자라면 아니, 삶을 지탱하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다. 특별히 지금 내가 힘들어 죽겠다 라고 말하기에는 적당한 근거가 없었다. 나는 그저 ‘살려고’ 보다 편한 방법을 택했을 뿐이다. 혹자는 “그래도 아이는 3살까지 엄마가 키워야지~”라고 말했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가 사는 게 먼저였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내가 엄마 휴직을 바라는 이유는 ‘육아 우울증’에 걸려서가 아니었다. 49:51로 매일이 행복과 불행을 왔다 갔다 했지만, 100의 불행만 있는 날들이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왜 엄마라는 자리를 버리겠다는 거야?
아이를 키우며 내 인생의 주도권이 나에게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을 하든 아이 위주였고, 내 욕구는 저 뒤로 뒤로 뒤로 밀려났다. 사소하게는 커피 한 잔부터 크게는 직업적 선택까지. 모든 것은 ‘아이를 돌보는 주양육자’ 역할을 수행하고 난 뒤에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면 선택 가능한 보기가 거의 없었다. ‘단 한 번이라도 나를 최우선으로 선택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점점 커져만 갔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경력 단절이었다. 아무리 따져봐도 정규직인 남편이 계속해서 바깥일을 하며 돈을 벌고, 프리랜서인 내가 집안일과 양육을 담당하고 동시에 꾸역꾸역 일을 하며 겨우 경력을 이어갈 것 같았다. 일 년, 이 년, 삼 년이 지나고 십 년 정도가 지난다면?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엄마보다 친구를 찾으며 더 이상 나의 돌봄을 필요로 하지 않을 텐데. 그때의 나는 과연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아니,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전업주부 알바’를 검색하며 지난날을 탓하고 있을 것 같았다. 상상하니 눈 앞이 깜깜해졌다. 그래, 이건 아니야. 바꿀 수 있을 때 바꿔야 해. 바로 지금!
각오는 됐으니 이제 현실을 따져 볼 차례다. A4용지에 <엄마 휴직, 실제로 가능한가?>를 제목으로 크게 써놓고 조목조목 따져보았다.
1. 남편의 육아 휴직 - 가능하다. 앞으로의 승진과 경력에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미래의 승진보다 지금의 내가 더 중요하기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2. 나의 돈벌이 - 프리랜서 특성상 월급은 없지만, 매 달 열심히 일한다면 3인 가족 생활비 정도는 벌 수 있다. 저축은 못 해도 손가락 빨고 살지는 않는다. 지금 월 50만 원 저축할래 아니면 앞으로 월 300 더 벌래, 따져보니 후자가 더 이익이다. 나의 경력을 이어가기 위해 지금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3. 주양육자가 바뀌면서 생기는 문제 - 아무래도 아이는 자기와 오랜 시간을 보낸 엄마를 아빠보다 더 좋아한다. 아빠와 아이 둘이 보내는 등원 전/후 시간이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응? 이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잖아? 아빠가 남도 아니고 가족이고 부모인데 뭐가 걱정이지?! 아빠는 아이를 부수지 않는다.
‘내가 이걸 왜 고민했지?’ 싶을 정도로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엄마 휴직, 가능하다!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