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를 시작하겠습니다.
칭찬과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면
"준비 됐습니까?"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눈과 손은 오롯이 한곳에 집중되어 있었고 주변 공기는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메쓰" 내 말이 떨어지자 코팅장갑을 낀 손이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드디어 녀석은 하얗고 구멍 숭숭한 속내를 드러냈다.
부레옥잠 공기주머니를 가로, 세로로 자르는 실험을 한 날이다. 칼을 수업에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위험한 물건이어서 웬만하면 칼로 자르는 일은 교사인 내가 한다. 오늘 실험에서는 아이들이 공기 주머니를 자를 때 느낌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안전교육을 10분 이상하고 조심, 조심 노래를 불렀다. 수업 내내 침착함을 유지하고 규칙을 잘 지킨 아이들을 칭찬한다.
자른 공기주머니를 스탬프로 찍는 활동을 미술과 연계해 판화 수업까지 이어갔다.
우리 반에는 말을 하지 않는 학생이 한 명 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하루는 교실에 남아 가지 않는 아이에게 물었다.
"루아야, 왜 집에 안 가?" 대답이 없다. 울듯한 표정으로 손톱만 만지고 있었다. 책상 위에 채우지 못한 공책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알림장 못 썼어?" 고개를 흔든다.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질문을 계속했다. 10여분이 지나서 알아낸 이유는 전날 제출해야 할 학습장을 다 채우지 못해서였다.
"루아야, 힘들면 조금씩만 해도 괜찮아. 선생님한테 말하기 싫거나 어려우면 학습장에 빨간색으로 써서 내도 되니까 걱정하지 마."
아이는 그제야 공책을 챙겨 집으로 갔다.
모둠학습을 할 때도 참여를 하지 않던 아이가 오늘 실험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판화를 열심히 찍고 있었다.
"루아 작품 진짜 멋지다. 나중에 이름 꼭 써서 내라."
루아가 몸을 웅크리지도 작품을 감추지도 않았다. 다행이다.
수업을 모두 마치고 아이들 작품을 앞 칠판에 스스로 붙이게 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루아가 작품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나에게 내밀었다. 칠판 가운데는 붙일 자리가 없어 아래쪽에 붙이려는데 두 손가락으로 내 옷을 살짝 잡아당겼다.
"위에"
루아가 나에게 말을 했다.
"위에 붙여 달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루아도 뽐내고 싶은 어린이의 욕심이 있는 보통의 아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좀 더 긴 루아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 같아 설레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믿고 기다리는 만큼 자란다. 어쩌면 루아의 마음은 다른 아이들보다 훌쩍 커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그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