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처음으로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 아흔을 넘기신 시어머니께서 편찮으시다. 집안에 어른이 아프면 차례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거라고 하시며 모여서 식사만 하자고 아주버님의 제안으로 그리하기로 했다. 어머님을 모시는 형님 힘드실까 아침은 갈비탕을 사서 갔다.
성묘를 다녀온 후 집에서 쉬는 중이다. 평생 휴가 안 쓴 존경씨가 이번에는 웬일인지 일주일 내내 연가를 썼다. 친정에도 가지 않기로 했다. 귀경길 차밀림이 걱정되었다. 명절이 지나면 이여사를 모시고 서울 나들이 가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식구 셋이 종일 집에 머문다. 밥 세끼 챙기는 일도 버겁다. 나도 쉬는 날이라 말하고 하루 한 끼는 외식을 한다. 나가 먹는 걸 싫어하는 지라 주로 배달음식을 이용했지만 오늘은 명절 냄새나는 기름진 음식이 당겨 밖으로 나왔다. 모두 나 같은 생각인지 사람이 참 많았다. 파전과 산채 비빔밥으로 기분을 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쓰는 돈은 아깝지가 않다. 다 먹고살자고 버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지 싶다.
솔직히 집에 쉬는 내내 시어머니 걱정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내게는 외할머니 같은 분이시다. 20년 넘는 시간 동안 싫은 소리 한번 하신 적 없고 당신 기력이 있을 때는 딸같이 며느리를 챙겨주셨다. 새벽같이 일어나 매일 화장을 하셨던 깔끔하고 단정한 어머님이 침대에 누워만 계시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마른나무처럼 바짝 야윈 모습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청력도 시력도 거의 잃어버린 데다 거동까지 불편하시니 누워서 종일 무슨 생각을 하실까 궁금하고 안타깝다.
돈을 내고 어머니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면 우리 부부는 가진 것 모두를 내놓을 수 있다. 이럴 때는 돈지랄도 소용없는 인생이 야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