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 있다. 장남과 장녀는 하늘이 내리는 운명이란다. 그래도 장남은 집안의 기둥이라 대접이라도 잘 받고 자라지만 우리의 K장녀들은 사정이 다르다. 오죽하면 그냥 장녀는 살림 밑천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어려웠던 시절 학교대신 공장에 다니며 오빠와 남동생들 학비를 벌었고, 그 시대를 지나서는 일 나간 부모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대신했다.
나는 장녀로 자랐다. 젊은 부모덕에 아들, 딸 차별을 받지는 않았지만 집안일을 대신하는 건 내 몫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부터 밥을 해 먹었고 부모님이 악을 쓰고 싸우는 날이면 이불속에 파묻혀 동생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학창 시절 내내 동생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며 유난히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생활을 통제받기도 했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속상한 일이 있어도 쉽게 표현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다른 사람 눈치를 유난히 보는 사람이 되었다. 글쓰기 동호회에서 만난 대부분의 장녀들이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책에서 오빠 개구리는 꿈에서 맛본 똥파리를 기억하고 동생들의 고맙다는 말에 기운을 차려 다시 열심히 희생하는 삶을 산다. 나는 그 부분이 마음 아팠다. 자신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마음이 아렸다.
지인 중 어떤 이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사고뭉치 남동생과 오빠를 위해 희생했고 이혼을 하고 아들 둘을 키우며 여전히 아들들의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그러던 그녀가 한계에 부딪혔는지 요즘 이상하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을 위한 인생은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되는 건데?"
"이번 문제만 정리되고 나면..."
그녀 앞에는 정리해야 할 문제가 또다시 생길 것이다. 나는 그녀가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한 인생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 바란다. 우울이 그녀 주변을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