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다. 입이 쓰다. 평생 입이 달아 어딜 가나 민망함을 달고 다녀야 했다. 흠, 솔직히 민망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많이 먹는다는 것은 나에게 챔피언 벨트 같은 것이었다. 날씬했으니까. 니의 썩소가 보이지? 그런데 이상증상이 생긴 것은 살이 찌면서부터다.
이상한 죄책감 같은 것이 생겼다. 거스를 수 없는 이치룰 피해 가려는 내 위선이 가증스럽다. 내가 다음 문장을 쓰면 아마도 읽는 이들은 혀를 찰 것이다, 입은 쓴데 식욕은 줄지 않는다. 입이 쓴 이유는 식욕 억제제 최고 단계인 4단계를 처방받아서 먹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욕은 그대로다. 입만 쓰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는데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에 대패 삼겹살이 먹고 싶어 24시간 영업점을 가야 하나 고민을 천만번 하다 수면제를 먹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며 당당하게 말한다. 실제로도 그렇게 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눈치만 본다. 좀 많이 보는 게 문제긴 하지만 난 괜찮다. 대신 허영이 있다. 잘나 보이고 싶다. 은근히 티 나지 않게. 대놓고 자랑질하는 건 없어 보여서 싫다.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다. 내 마름의 열망에 대해서.
나는 외모지상주의형 인간이다. 화려하고 튀는 것을 좋아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시선을 사로잡고 싶어 한다. 늘 주인공이 되어야 직성이 풀린다. 춘향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몽룡은 필요 없다. 그냥 춘향이면 된다. 몽룡이는 향단이가 가지든 월매가 가지든 내 알바 아니다. 그네를 타고 단독샷을 많이 차지하는 것이 유일한 나의 목표다.
나는 왜 그럴까? 애정결핍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오십 살 어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때는 불륜을 꿈꾼 적도 있다. 나만 사랑하고 매일 예쁘다고 말해 준다면 변학도라도 마다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새가슴인 데다 탁월한 미모도 아니고 사나이 다운 성격이 나의 일탈을 막았다. 결론은 사랑이 필요하고 그 사랑울 대체하기 위해서는 허영이 필요하고 내 허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마른 몸이 필요하다.
오늘은 전주로 여행을 왔다. 객지에서 먹을 게 마땅찮다. 혼자 유명 맛집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 것은 결례다. 전북대 앞 술집에 자리를 잡았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예의상 안주를 두 개 시켰다. 계란말이와 오징어 볶음 소면. 소소하다. 오징어 볶음이 매워서 좀 시원한 안주가 하나 더 필요할 것 같다. 입이 쓰다. 여사장님이 자꾸 쳐다보신다. 오늘은 좀 부담스럽다. 살을 빨리 빼야겠다. 세 개 시켜도 부끄럽지 않게. 조금 남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