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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를 사야 할 때

간헐적 사치

by 정말빛

나는 키가 작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장신의 동생들 사이에 서면 유난히 작아 보인다. 남동생이 185cm, 여동생은 거의 170cm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어릴 적 청바지 세장을 나란히 펴 놓고 남동생이 반바지냐며 놀린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굽이 낮은 신발을 신지 않았다. 외출할 때는 하이힐이었고 운동을 할 때를 제외하면 굽이 있는 운동화를 신었다. 그냥 스스로 키가 작다는 콤플렉스가 생긴 것이다. 학교 실내화도 통굽에 11cm를 신었으니 내 발이 얼마나 피곤했을까. 6학년 담임을 하던 시절 남학생들은 내 실내화를 신고 저세상 공기를 체험한다는 장난을 쳤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나이가 들면서 몸이 조금씩 고장 나기 시작하니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곳이 무릎이었다. 더 이상 굽 높은 구두를 신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운동화를 모은다. 자차를 이용해 출퇴근을 하니 사실 신발을 신을 일이 거의 없다. 운동화를 사는 것은 나에게 약간의 사치다. 이유 없이 쇼핑을 하고 싶을 때 운동화만 한 것이 없다. 구실을 찾기가 좋다. 치마에 어울리는 것, 걷기 운동에 신는 것, 러닝용, 헬스용... 별 것 아닌 이 사치는 내게 작은 위로가 된다. 출근을 하는 이유. 돈을 버는 이유.


직장인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지친 몸을 다시 세우고 일해서 버는 돈을 자신에게 오롯이 쓰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다. 내 일을 사랑하지만 노동의 구실이 필요할 때가 있다. 지금이 딱 그렇다. 더워지는 날씨, 바닥을 드러내는 체력. 쌓여가는 피로. 운동화 한 켤레를 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나를 위한 위로의 선물.

딱히 필요하지 않지만 구실을 만들기 좋은 작은 사치. 여러분은 무엇으로 생활의 위로를 얻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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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