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퇴근 시간이 되면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번 주말엔 무엇으로 생명을 연장해야 하나? 보통의 주부들이라면 매일이 고민이겠지만, 팔자 좋은 주말부부인 나에게는 가끔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평일, 성인이 된 아들은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고 나는 급식으로 연명한다. 남편은 근무지에서 회사밥과 식당밥으로 생활하니 주말만이라도 집밥을 해주고자 노력했었다. 일종의 의무감이었다. 나름 보람 있는 일이기도 했고.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큰 비가 예상되어 이번 주에는 집에 오기 힘들 것 같단다. 재난과 관련된 일을 하는지라 여름이면 자주 있는 일이다.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걱정거리 하나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토요일 아침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들이 김치전이 먹고 싶단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전이 당겼던 모양이다. 냉동실에서 이것저것 재료를 꺼내 후다닥 부침개를 부쳐내니 아들이 엄지 척을 해 보였다. 오후에 밀린 집안일을 하고 취미활동도 좀 즐기다 보니 어느새 또 저녁시간이다. 배달음식이나 간단히 먹을까 생각했는데 비가 오니 괜스레 라이더들이 걱정되었다. 오지랖도 넓지. 냉장고를 뒤지니 몇 가지 야채가 있었고 아들이 사둔 베이컨 유통기한이 임박했다. 김밥을 해야겠다 마음먹고 보니 밥이 없었다. 그래서 요즘 유행한다는 키토김밥을 만들었다. 밥이 안 들었으니 김말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는 지인의 말이 생각났다. 지단을 부치고 야채를 손질했다. 재료를 듬뿍 올려 돌돌 말아 놓으니 모양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가지런히 잘라 접시에 담아 아들 방에 넣어주었다. 게임에 정신이 팔렸던 아들이 방문을 열고 나와 진짜 맛있다며 칭찬했다. 맛이 좋았다.
김밥을 한 알 한 알 입에 넣는데, 밤새 야근하느라 대충 끼니를 때웠을 남편과 군대밥을 먹고 있을 큰 아들이 생각났다. 주말 저녁이면 가족이 모두 모여 앉아 한 끼 식사를 즐기고 한 주 동안 밀린 수다를 떨던 그냥 평범한 가족의 식탁이었다. 그때는 밥 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내 잠시의 노력으로 온 가족이 따뜻함으로 충만하다는 보람이 있었다. 요즘 내가 살림에 흥을 잃은 것은 나이가 들어가는 탓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할 수 없음으로 인한 결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다시 그런 날이 오기는 힘들 것이다. 아이들은 장성해 그들의 세상으로 나가 가장 가까운 남의 삶을 살 것이고, 남편과 나는 한집에서 보통 부부들처럼 살겠지. 아직 현실이 되지 않은 일이지만 좀 낯설다.
늦잠에서 깨어보니 새벽에 돌아온 남편은 청소 중이었다. 부산에서 세종까지 첫차로 왔으니 힘들 만도 한데 참 대단한 사람이다. 조용히 주방으로 가 뜨끈한 시래깃국과 밥을 준비했다. 식사를 마치고 그는 다시 시어머니가 계신 그의 텃밭으로 향한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뭘로 할까? 무엇을 먹느냐보다는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엄마 말이 생각난다. 누군가를 위한 한 끼의 고민이 아직은 행복해야 할 이유를 다시 상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