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요 며칠 날씨가 매서워지며 비로소 겨울이 왔음을 실감한다. 차갑기만 해도 견딜 만한데, 내가 사는 지역은 유난히 흐린 날이 잦다. 하늘이 눌러앉은 듯한 날들이 이어지니 몸도 마음도 함께 축축 늘어진다. 내 기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시간은 흐르고, 그 위에 해내야 할 일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몸이 힘들다.
내가 막 마흔이 되었을 무렵,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있었다. 그때 그녀는 마흔다섯이었다. 결혼을 일찍 한 덕에 자식들은 이미 성인이 되었고, 하루 네 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외에는 특별히 바쁜 일이 없어 보였다. 매일 아침 열 시쯤이면 “커피 마시러 와”라는 톡이 왔다. 우리가 가까워진 계기도 커피 덕분이었다.
그녀의 집 현관문을 열면 쾌쾌한 냄새가 불편했다.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음식들이 뚜껑도 덮지 않은 채 말라가고 있었고, 집 안은 정리되지 않은 옷가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를 부를 게 아니라 집 정리부터 좀 하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내 마음.
식탁에 마주 앉으면 이야기는 늘 비슷했다.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 “이 약이 좋다더라, 저 병원이 잘 본다더라.” 내가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그 이야기는 재미없었다. 나를 위해 매번 직접 고급 커피를 내려주던 그녀의 성의가 고마워, 나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착한 동생인 척을 했다.
위선적!!
올해, 나는 병가를 열흘쯤 쓴 것 같다. 나를 오래 괴롭혀 온 삼차신경통은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결정적으로 나를 주저앉힌 것은 허리 통증과 오십견, 그리고 독감이었다.
결정타! 오심견!!!
계약직인 나는 웬만해서는 결근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병가까지 냈다는 건, 정말 어쩔 수 없었다는 뜻이다. 요즘은 팔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티셔츠 하나 입는 일도 버겁다.
몸이 이러니 집안일이 될 리 없다. 혼자 있을 때야 괜찮지만, 주말에 남편이 오면 괜히 민망하고 부끄럽다.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얼굴에는 늘 짜증이 가득하고, 입만 열면 징징거린다.
꼴이 말이 아니다.
요즘 언니 생각이 많이 난다.
늘 아프다 말하며 흐트러진 집에 앉아 커피를 내리던 모습, 그래도 나를 위해 잘 웃어주던.
그때의 나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미안하다 언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