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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uco Oct 21. 2020

오후로 문화, 욕조 문화

_동경에서

 초등학교 3학년 무렵 그 당시 대부분의 부모님들처럼 우리 집도 새 아파트를 구입하게 되었다. 새 아파트는 주방도 깨끗하고 뭔가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단연 욕조였다.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나는 수시로 동네 목욕탕을 다녔는데 그 목욕탕은 같은 반의 남자아이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목욕탕이었고 목욕탕에서 친구들을 자꾸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웠던 나는 집에 욕조가 생긴 것이 너무나 기뻤다. 

 그 당시의 욕조는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낯선 것이리라, 수도세며 난방비를 생각하면 목욕탕에 가는 것이 더 저렴했을 테고 부모님들은 갑자기 생긴 욕조를 빨간 다라이처럼 사용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주택에 살던 시절에는 그 빨간 다라이에 나를 목욕시키곤 했으니까 말이다. 가끔 사람들이 예전 일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는 것을 떠올리면,  '우리 집 욕조에는 지금 배추가 목욕 중이야'라고 김장철에서야 제 구실을 찾은 듯 사용되는 욕조였다. 그렇게 한국의 욕조는 설 곳을 잃게 되고 한동안 집을 리모델링할 때 욕조를 철거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욕조 대신 샤워 부스라는 뭔가 서양식 같은 구조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집을 구할 때는 욕조가 있는 집을 원했는데 욕조가 있는 집이 좀처럼 많지 않았었다. 그리고 막상 욕조가 있더라도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일까 위생상태가 정말 좋지 않았다. 한동안 유행했던 마사지 기능이 달린 스파 욕조는 막상 틀어보면 이물질이 하염없이 나오곤 했었다. 그래도 욕조가 달린 집을 빌렸고 열심히 청소도 해서 특히 겨울이면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곤 했었다.


 결혼하고 얼마 후 교토의 료칸으로 여행을 갔다. 일본의 온천은 그때서야 처음 가본 나는 그곳의 노천온천에 빠져들었다. 가을의 끝무렵의 노천온천은 머리는 시원하고 몸은 뜨거운 그 기분에 바람과 새소리만 들려와서 '천국이구나'라는 생각이 정말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 이후로 나 자신도 히노키 욕조가 갖고 싶어 졌고 게스트 하우스를 의뢰받거나 하면, 일단 욕조는 큼직하게, 예산이 된다면 히노키 온천을 설계하곤 했었다. 어느 게스트 하우스는 정말 작은 제주 민가였는데 꽤 큰 공간을 욕조에 할애해서 설계를 하였었다. 클라이언트에게도 무사히 통과되어 리뉴얼한 그 민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욕조가 크게 나온 덕에 작은 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물론 욕조의 인기도 좋았던 것 같다. 여행에서 피로를 풀거나 가족이 함께 목욕을 하는 건 여행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담집_설계:DaAM

일본에서의 생활은 아침, 점심, 저녁의 일과가 한국보다도 더 확실히 나누어지는 것 같다. 아침과 점심의 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저녁의 일과라 하면 단연 오후로(욕조)에 들어가는 것이다. 

지금 사는 곳은 5시면 유우야케코야케(夕焼け小焼け)라고 하는 차임벨이 울려 퍼지는데 그 벨이 울리면 하루가 저물어 가는구나 라는 생각과 왠지 모를 안심감이 들게 된다. 빨간 노을 뒤에 오는 파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인사말 소리며, 어느 집에서 풍기는 저녁밥 냄새는 어린 시절 그 파란 시간을 떠올리게 해 준다. 

그런 저녁시간을 보내고 하루 일과가 끝나는 무렵 욕조에 물을 받고 따뜻한 물에 들어가는 것이 저녁 일과인 것이다. 뜨겁게 받아진 욕조에 들어가 눈을 감으면 오늘에 감사하는 마음과, 하루가 자연스럽게 끝이 나는 차분한 마음이 들어 잠도 잘 오게 된다. 일본의 욕실은 크지 않아도 시스템은 정말 잘되어있는데, 목욕물을 설정해두고 받으면 자동으로 적당한 양으로 받아지고 목욕물이 다 받아지면 '목욕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는 음성도 나온다. 물이 식으면 데우는 기능도 있어 가족들이 돌아가며 쓰는 데에도 정말 무리가 없고, 매일 사용해도 귀찮지가 않다. 한국보다는 목욕하는 문화가 일반적이어서 욕실 시스템 개발도 잘되어있는 듯하다. 비슷한 것 같지만 욕실 문화조차도 사실은 이처럼 다르구나 하고 느껴진다. 그런 하나하나가 쌓여서 각 나라의 습관이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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