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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uco Oct 20. 2020

일상 같은 여행? 여행 같은 일상?

_동경에서

 여행할 때 여행지에서 이방인이 처럼 보이는 것보다는 현지인처럼 자연스럽게 지내고 싶은 욕구가 늘어남에 따라 여행 콘텐츠도 예전의 그것과는 달라진 것 같다. 호텔, 모텔, 여관 혹은 3성급 ,2성급을 따지는 철저한 자본주의의 선택이 아닌 어떻게 지내고 싶은가에 따라 정하는 에어비앤비 같은 여행을 위한 콘텐츠는 여행이지만 일상처럼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해 준다. 

확실히 이방인으로 보이기보다 현지인처럼 지내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평소의 생활은 어떠한가, 평소의 일상은 그대로 받아 드리고 있는 것 일까? 그게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일상을 여행처럼'이라는 어디선가 나온 슬로건 같은 삶을 원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보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sns 같은 자기를 드러낼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일까? 흔히들 이야기하는 보여줄 수 있는 매체가 늘어남에 따라 보여지고 보게 되고 보여주고 싶은 열망들이 이러한 여행과 삶의 경계를 애매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 의미가 모두 이해가지만 그에 반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일상이 소중하기 때문에 사는 곳을 정할 때는 집의 크기나 내부보다는 주변 환경을 더욱 고려하여 구하는 우리로서는 그 일상을 색다른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묻어나는 하루하루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새로운 곳에 가면 호기심에 하루에 하고 싶은 것들이 보통보다는 많아 짐으로 일상의 루틴이 온전히 같아질 수는 없는 것 같다, 처음엔 에어 비앤비도 이용했고 지금도 가끔 이용하지만 어찌 됐든 일반적으로는 호텔이 편한 건 사실인 것 같다. 

2015년 준공한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vill;林(빌림)_설계:DaA.M_사진:남궁선

어느 날이었다. 일상이 안정되어 감에 따라 타성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여행을 간다. 잠시 뿐이다. 일본을 갔었다. 일본에서는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여행으로는 무리였다. 일상에서 느끼고 오래도록 차근히 하고 싶어 졌다. 동경으로 사는 곳을 바꾸었다. 이제는 동경이 여행이 아닌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다시 자연스레 묻어나는 하루하루를 이곳에서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잠시 떠나온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지내온 서울을 떠나 온 동경은 일상이지만 여행이었고 여행이지만 일상이었다. 그리하여 난 지금 낯선 곳에 살게 되어, 수런거리는 일상 같은 여행을 하고 있으며 여행 같은 일상을 지내고 있다. 

2017년 준공한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수리담_설계:DaA.M_시공:planito

 리고 동경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주말에도 아침의 루틴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아침을 먹는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집 앞 카페에서 아침메뉴를 먹었다. 이곳은 아침에 적당히 합리적인 가격으로 합리적인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커피와 갓 구운 빵, 샐러드 , 수프 등 고르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아침메뉴들이 적혀있는 메뉴판을 보고 있자면 왜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밖에서 먹는 아침은 점심의 그것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일본어가 서툴러서 어떤 상점이든 밖에 적힌 메뉴를 또박또박 읽고 나서 들어가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었다. 메뉴를 보는 동안 안에 있는 주인과 눈이라도 마주칠 때면 소심해져서 발길을 돌리고 했었다. 그래서 더욱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라고 할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생활 반경이 점점 늘어나게 됨에 따라, 여행의 기분은 점점 사라져 간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을 갈망하게 된다. 어쩌면 그런 것이리라. 일상 같은 여행을 위해서는 그 나라의 문화의 이해도와 소통이 제일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 단순히 현지인이 가는 동네를, 가게를 방문하는 일이 아니라 시간과 언어의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특별하다지 않는 그 무엇. 이렇게 까지 깊숙이 살게 되기 전까지는 몰랐던 시간과 공간. 그 간극을 좁히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어쨌든 그런 생활을 지속하면서 별것이었던 일들이 별것 아닌 일들이 되고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 가게가 늘어났다. 말이 통하여 주문에 성공했을 때의 기분은 어느 게임의 다음 단계를 갈 때의 그 무엇과 비슷한 듯하다. 아무 거리낌 없이 당연한 듯 편하게 서비스를 받던 생활에서 이제는 내가 무언가 노력을 해야 얻는 그것의 차이는 나로서는 작은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림을 보고 시키고, 그다음 메뉴 안에서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것만 시키고, 다음에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리하여 오늘 아침은 고소한 호밀빵에 아보카도를 올린 토스트와 베이컨, 스크램블 에그, 그리고 당근 레페와 계절의 샐러드가 곁들여진 볼륨 가득의 아침을 먹었고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파트너는 말한다. "그거 일본어 덕이 아니라, 자본주의여서 가능한 거야." 물론 맞는 말이다. 금전적으로 풍족하다면 실패도 덜 두렵고, 여유로움은 다름이 아닌 기회를 가져다주는 것이니까. 하지만 난 한정적인 기회에서도 최대한의 경험을 해보고 싶다. 경험으로 여유로워지고 싶다. 자본주의지만 이쁜 말이 오고 가고 환심이 아닌 호감으로 서로를 대하는 따뜻한 경험으로 살고 싶다. 

 그런 따뜻한 경험들이 쌓일 무렵이면, 일상 같은 여행, 여행 같은 일상이 아닌 온전한 내 일상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때는 또 어떤 기회를 만들게 될까? 그 역시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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