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내려온 지 벌써 9일이나 됐다. 퇴직하고 여유로운 삶을 꿈꾸고 제주에 내려오는 사람들도 하루하루가 생각한 것만큼 여유로울까? 어느 누구나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여행자의 신분으로 올 때는 여유롭겠지만 그곳이 내 삶이 될 때는 여유는 없어질 거 같다.
나의 시간도 여유는 없고 불안하고 초조하다.
퇴사를 했더라면 아르바이트를 구할 생각이었는데, 휴직을 하고 내려왔기 때문에 큰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그저 하나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대사 캘리 작업을 할 생각이었다.
작업을 하려면 앉아있어야 하는데 고질병인 허리디스크가 말을 안 듣는다.
앉아있지를 못하니 누워서 작업을 하는데 누워서 작업을 하니 어깨가 아프다.
그러다 보니 다시 멍 때리고 다시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불안하고 짜증이 난다.
서울에 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숨이 막힌다.
숙소 사장님이 추천해준 카페 BOHO라는 곳이었다. 사람 없는 곳이라 추천해주셨는데 정말 사람이 없었다. 와? 이렇게 사람이 없을 수 있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어서 캘리 작업하는데 아주 적합했다.
BOHO에서 작업을 하다 밥을 먹기 위해 이동했다. 협재 쪽으로 걸어가다 맘에 드는 식당을 발견했다. 뭘 파는 가게인지 검색하지 않고 그냥 들어가 봤다. 영 아니면 나올 생각에 들어갔는데 딱새우장을 파는 곳이었다.
즐겨먹는 음식은 아니라서 나갈까 고민했는데 도전해보기로 했다. 음.. 입에 맞진 않았다.
딱 밥만 먹고 신창 해안도로로 향했다. 내가 좋아하는 곳이었다.
예전 제주여행 대 202번 버스를 타고 가다 풍차를 발견하고 '어? 여기는구나. 효리네 민박에서 나온 그곳' 내려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내려 풍차만 보고 왔던 기억이 있다.
그때 그 기억을 안고 갔다. 감사하게도 해가 떠 천천히 걸으며 이 순간을 즐겼다. 빛나는 윤슬을 보니 너무 좋았다.
제주에 온 지 9일 동안 사진을 가장 많이 찍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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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 근처에 있는 뷰 맛집인 3인칭관찰자시점에 왔다. 잠깐 비췄던 해는 금세 모습을 감췄고 다시 흐려졌다. 눈 앞에 바다 작은 카페, 조용한 분위기는 책 읽기 적합한 곳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 오래간만에 집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계속 한 정거장 전 혹은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렸기에 집 앞에 이런 식당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배는 고팠고 제주 오고 흑돼지는 먹지 않아서 먹을까 고민하다 평점을 살펴봤다. 평점은 꽤나 높은데 지금 고기를 먹으면 생활비가 부족할 거 같았다.
2인분에 3만 3천 원이고 이 돈이면 편의점에서 컵반을 많이 살 수 있는 데하며 고민하다 그냥 먹으러 갔다.
고기는 정말 맛있었는데 고기보다 더 맛있는 건 버섯이었다.
쫀쫀하고 탱글탱글한 버섯은 버섯을 싫어하는 사람도 즐겁게 먹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다행히도 해가 떴을 때 해안도로에 다녀와서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