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두 번째 정리해고.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한 가지
미국에서 살면서 익숙해져야 하는 것들이 많다. 너무 어이없게도 느린 행정 처리, 말도 안 되는 병원 비용, 식사비용을 제외하고도 항상 더해지는 팁문화. 하지만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아주 유연해서 살얼음판을 걷게 하는 미국의 노동시장. '유연한 노동시장'은 학문적으로 고상하게 표현한 것이고, 신랄하게 얘기하자면 하루아침에 어이없이 정리해고를 당하는 것이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사귀었던 친구가 해준 말이 있다.
"만약 여기에서 정착하고 일하게 되면 적어도 한두 번은 Layoff를 경험할 거야."
이제 사회생활도 시작하지 않은 나에겐 그저 '아, 그래' 하고 지나갈법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 말의 뜻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의 첫 번째 정리해고 경험은 참 잔인하게도 처음으로 취업한 디자인 회사였다. 실력 있는 선배 디자이너들과 일하며 나름 자신감도 생기고 일도 많이 익숙해지던 2년 차였다. 항상 바쁘던 회사였는데 그해 여름을 기점으로 프로젝트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 당시 팀의 가장 막내 디자이너였던 나는 디렉터의 눈치를 보며 지루하고 긴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은 금요일 오후 4시
벌써 아주 오래전 일인데 참 생생하게 남은 기억이다. 긴 연휴를 앞둔 금요일 오후 4시. 다들 오랜만에 연속으로 꽤 오래 쉰다고 들떠있었다. 디렉터가 예정에도 없는 미팅을 잡았고, 그 장소가 한 번도 미팅을 해본 적 없는 회사 맨 끝방이었지만, 사회초년생인 나는 아무 감을 잡지 못했다. 아주 해맑은 표정으로 '이 시간에 웬일이야?' 하고 웃던 바보 같던 나의 모습을 기억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간단히 얘기하고 다른 팀에서도 다들 한두 명씩 내보내야 하는 상황임을 강조했다. 전혀 예상도 못했기에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나는 지금 어디인가. 디렉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물속에 빠진 사람처럼 그 사람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지 않았다. 이런 반응이 크게 처음은 아닌 듯 디렉터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의 실적이나 퍼포먼스의 문제가 아님을 여러 번 강조하더니, 황당해하는 내 표정이 불쌍했는지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나도 해고를 경험해 봐서 니 기분이 어떨지 잘 알아.
근데 내 말을 믿어. 오히려 더 좋은 전환점이 될 거야."
음, 나름의 위로였겠지. 하지만 그 당시에는 화가 났다. 같은 팀이라고 해놓고 이렇게 황당하게 준비도 없이 나가라고 하다니.
회사는 언제나 떠날 수 곳
나는 첫 회사라고, 처음 생긴 내 자리라고, 책상에 이것저것 가져다 두고 디자인 영감 받을 만한 작품들도 프린트해서 붙여놓고 내 자리를 정성껏 꾸며두었다. 아, 종이 가방이라도 하나 둘걸. 막상 회사를 나가야 하는데 조용히 짐을 싸려고 하니 왜 이렇게 구질구질 자리에 둔 것들이 많은 것인가. 동료들한테는 해고된 직원들이 다 떠나면 회사에서 전체 이메일을 보낸다고 한다. 나는 간단하게 가까운 팀원들에게만 괜찮은 척 인사를 하고 그렇게 회사에 가져다 둔 잡동사니를 끌어안고 회사밖을 나섰다.
역시 그동안 뉴욕에서 쌓은 내공 때문일까. '생각보다 덤덤하네?' 생각하며 차에 시동을 켜는 순간 마치 수도꼭지에 물을 튼 듯이 서러움의 눈물이 폭발했다. 일단 회사 주차장에서 나가야지 하는 생각에 가까운 길거리 어딘가에 차를 세우고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한바탕 눈물을 쏟아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날의 교훈은 그 뒤에 많은 회사를 이직하며 경력을 쌓아온 나에게 아주 강력하게 남아있다. 회사는 언제나 예고 없이 팽 당할 수 있는 그런 냉정한 곳.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은 절대 회사의 내 책생엔 어떤 물건 하나도 가져다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인생의 모든 경험은 소중하다
첫 번째 해고가 있은 뒤 한 8년쯤 지났을까. 두 번째로 정리 해고를 겪게 되는 순간이 왔다. 나의 상사가 예정에 없던 미팅을 잡았다. 생전 함께 미팅을 해본 적 없는 HR직원과 함께. 순간 뭔가 싸한 느낌이 왔고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나는 이 일을 위해 보스턴까지 이사를 왔기에 이 통보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예전 그 여리고 여리던 그 사회초년생의 내가 아니었다.
디렉터는 왜 나를 채용하게 되었는지, 왜 그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내가 회사에 얼마나 긍정적 영향을 주었는지 이런저런 말을 이어갔다. 다시 회사 방향이 수정되면 꼭 다시 함께 일하자는 말과 미안해하는 상사를 바라보며 나는 사실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 정말 담담하게, '그래요? 음 뭐 알겠습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하고 미팅룸을 나왔다.
이번 회사는 친절하게도 커다랗고 튼튼해 보이는 종이상자를 건네주었다. 필요한 짐이 있으면 차곡차곡 잘 넣어서 떠나라는 배려였겠지만, 내 자리를 둘러보니 회사에 입사할 때 받은 연필, 노트북, 각종 파일 정리함등 밖에 없었다. 사용했던 노트북에 파일만 다 정리하고 나는 가볍게 회사를 떠났다.
이번에도 그렇게 펑펑 눈물이 나려나?
회사에서 잘린 와중에 변태스럽게도 나는 내심 궁금했다. 차에 앉아 시동을 걸었고, 이게 웬일. 눈물이 아니라 웃음이 났다. 이제 해방이라는 알 수 없는 개운함과 내가 멈출 수 없었는데 멈추게 해 줘서 오히려 고맙다는 이상하고 미묘한 감정들. 나는 유튜브에서 가장 신나는 노래를 검색하고 창문을 열고 노래 볼륨을 한껏 높였다.
고마워,
나를 멈추게 해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