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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디자이너 Feb 27. 2024

8_쉬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번아웃 극복 시도 일지

첫 번째 시도


사실 경주마처럼 달려오던 내가 조금 속도를 늦추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대략 5년 전쯤 체계 없이 회사 몸집만 늘리려는 에이젼시에 들어가 일하다 몸의 이상을 느끼고 잠시 프리랜서를 선언한 적이 있었다. 면역력이 극도로 낮아졌는지 알 수 없는 피부의 발진과 수포들로 고생했고 손목을 너무 많이 써서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제대로 작업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잠시 쉬어야겠다는 마음으로 회사에 사표를 냈다. 그렇게 마지막 날 회사를 나오는 길, 나는 이미 그동안 알고 지내던 다른 회사의 디렉터들에게 이메일을 쓰고 있었다. 쉬겠다고 회사를 나오면서도 바로 다음일이 없음이 불안했던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 나는 한창 일할 미드 레벨 정도의 디자이너였고, 일은 바로 쉬지 않고 들어왔다. 그래도 나름 처음 한 두 달은 내 스케줄로 일하는 조건을 걸고 프로젝트를 맡았다. 그 덕에 산책도 두 시간씩 다니며 힐링의 단계를 걷는 듯하였다. 그러나 달콤한 휴식도 잠시 뿐. 바로 오피스에 출근하는 조건으로 더 좋은 프로젝트를 하는 곳과 연결이 돼서 나는 바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번아웃은 쉬운 상대가 아니다


이렇게 잠시 미니 힐링을 통해 기운을 얻은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의욕을 찾는 듯하였다. 짧은 프리랜서 생활을 마치고 운 좋게도 원하던 회사로 들어왔던 나는 그래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아보자! 하며 또다시 열정을 불태웠다. 상처가 난 곳에 임시 치료를 해놓고 그걸 다 나았다고 착각하고 다시 몸을 혹사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에 있던 회사보다 큰 조직으로 오면서 나는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여러 자극을 받았다.


그래, 지금이 기회야!

다시 한번 성장해 보는 거야!


그 당시 실내 사이클 수업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나는 나의 하루를 꽉 채워서 보람 있게 쓰겠다는 다짐하에 새벽 5시 반 수업을 들었다. 집에서 맨해튼에 있는 스튜디오까지 대충이라도 준비하고 가려면 한 시간은 걸리니 새벽 4시 반에 기상해야 했다. 그렇게 6시 반에 수업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출근 준비를 마치고, 커피숍에 가서 한 시간 반쯤 책을 읽고 회사로 출근했다. 회사 퇴근뒤에도 바로 집에 가지 않고 커피숍에 들러서 잠시 공부를 한 뒤 퇴근을 했다. 여기에 그 당시 사이드잡으로 레스토랑 디자인을 하고 있었기에, 밤에도 나의 작업은 끝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나 싶은 무리수의 연속이었다. 체력과 에너지가 충분한 상태였다면, 보람찬 하루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의 배터리로 겨우 유지해 나가는 소진 상태였음을 몰랐다. 배터리가 한 10%쯤 남았을 때 잠시 반짝 충전한 것을 나는 100%로 다시 찼다고 대단한 착각을 한 것이다.


두 번째 시도


코로나로 세상이 멈추기 시작하기 직전, 나는 긴 연애의 마침표를 찍고 텅 빈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런 마음으로 회사에서 동료들을 보며 괜찮은 척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느낄 때쯤, 코로나로 인한 상황이 급속하게 악화되었다. 전 세계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팬데믹 상황에 우리는 모두 재택근무라는 새로운 형식의 라이프 스타일을 갖게 되었다.


재택근무 시작 후 새벽에 우연히 집 근처에 있는 Prospect Park라는 아주 큰 공원에 나가게 되었다. 워낙 유명한 공원이라 언제나 붐비던 그 공원이 코로나의 영향으로 인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한가했다. 20대부터 이어오던 나의 힐링 방법 중 하나는 언제나 사람이 없는 새벽 거리나 공원을 걸으며 산책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공원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다 우연히 나의 운명적인 힐링 장소를 발견했다. 아주 커다란 호수가 보이는 조용한 그곳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일출에 나는 마음을 빼앗겼다. 나는 정말 매일 그곳에 갔다. 아무도 없는 그 장소에서 매일 해가 뜨는 모습을 보고 때로는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고, 때로는 매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주는 자연의 모습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 이때의 경험은 지금도 생생할 만큼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의 깊은 위로를 받았다.


'이 정도면 나름 마음의 힐링을 제대로 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드디어 번아웃을 극복하는구나!'


그 당시에는 나는 또다시 너무 빠른 승리의 축배를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고질적인 '열심히 살아야지 병'이었다. 나 나름대로는 회복하려 여러 방법을 쓴 것이었지만 문제는 또 너무 열심히 한 것이다. 그 당시 아주 극심한 불면증을 겪고 있었다. 새벽까지 잠이 잘 오지 않고 자주 악몽을 꾸었다. 나를 품고 있던 우주가 사라졌으니 나는 그저 언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지 모르는 상태로 그저 무중력의 공간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텅 빈 마음을 채우려 스스로에게 새로운 과제를 주었다.


올해 안에 책 100권 읽기.

그리고 그에 대한 서평 기록하기.


부지런히 책을 읽은 덕분에 그해 100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그동안 손이 가지 않던 인문서적을 주로 읽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정말 다양해졌고, 사람과 세상을 한층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렇게 고마운 책 읽기였고 그 덕분에 많은 것을 얻었다. 책 읽기와 더불어 소박하게 시작한 글쓰기는 나의 마음을 뒤돌아보게 해 주고 내가 살아갈 방향을 잡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적당히를 모르는 나라는 인간


그렇게 책 100권 읽고 서평 쓰고 힐링장소로 산책만 다녔으면 아마 나의 두 번째 시도는 성공으로 끝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내가 아니었다.


당시 갑자기 둘에서 하나가 된 나는 미래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영향을 많이 받는 업계의 특성상 회사도 언제 잘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앞날이 극도로 불안해진 나는 어딘가 홀린 사람처럼 경제공부와 주식공부를 했다. 이제 시작할 수 있는 감은 잡았다고 생각하니 종잣돈이라는 걸 열심히 벌어야 한단다.


나는 그 당시 New York School of Interior Design이라는 학교에서 하는 Continuing education프로그램 중 한 수업을 저녁에 3시간씩 가르치고 있었다. 회사일이 끝나고 또다시 3시간씩 떠드는 것도 힘든데, 나는 일주일에 이틀, 두 명의 학생 개인 교습까지 맡게 되었다.


분명 '쉼'이라는 단어로 2020년을 시작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거울 앞에는 낯선 여자 한 명이 서있었다.


살이 몇 킬로나 빠졌는지, 거울 속에는 해골이 친구 하자고 나타날만한 몰골을 한 수척한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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