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 그날로 향하던 과정
점을 연결하면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당신은 미래를 상상하면서 점을 연결할 수 없어요. 오직 과거를 돌아봤을 때만 그것들을 연결할 수 있죠. 그러니 점들이 미래에는 어떻게든 연결될 거라 믿어야 해요.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 등 그것이 무엇이든 말이죠. 이런 접근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제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냈어요."
이 글은 'Connecting the Dots'라고 치면 관련 기사가 수없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 스티브잡스의 스탠포트 연설문에 나온 구절이다. 나도 이 연설을 너무 인상 깊게 봐서 여러 번 보고 일부분 노트에 적어두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의 모든 경험들은 전혀 연관되어 보이지 않는 인생의 작은 점들이다. 서로 상관없이 존재해 보이는 이 작은 점들은 예상치 못한 계기로 서로 연결되어 선이 된다. 그렇게 더 많은 경험의 점을 만들어가며 이어진 선들은 결국 서로 이어져 하나의 도형이 된다.
이 연설문을 들을 당시에는 참 멋진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추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들을 실제로 경험한 일이 있었다, 진짜 인생의 '점'들이 이어지는 경험을 한 뒤 나는 이 말을 정말 깊게 믿게 되었다.
The first dot
나를 가르치는 길로 이끌어준 첫 번째 '점'은 너무도 우연치 않은 계기로 일어났다.
시작은 2019년 가을, 새로 들어간 회사에 처음 들어가 모든 게 낯설던 참이었다. 어색하게 커피 기계 앞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며 서있는데 인상 좋게 생긴 남자가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우리는 같은 팀이었지만 하는 업무가 달라서 크게 마주 칠일은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안면은 텄지만, 서로 일이 바빠서 가끔 지나가다 눈인사만 하는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다 함께 점심을 먹는 날이었다. 옆자리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동료가 "나 뉴욕에 디자인 학교 두 군데에서 수업한 지 한 10년 됐어."라고 말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와, 부럽다. 나도 언젠가 미국에서 학생 가르쳐보는 게 꿈인데!"라고 대답했다.
그 후 몇 달이 지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어느 날 그 동료가 나에게 다가와서 자신이 사정이 생겨서 학교 한 군데에서 더 이상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때 너 티칭에 관심 있다고 말한 게 기억이 나서 나를 학교에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에 일단 고맙다고 말하고 잠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처음엔 솔깃했지만 생각해 볼수록 난 경력도 너무 부족하고 커리큘럼을 새로 만들어 수업을 가르친다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를 추천해 준 동료에게 진심으로 고맙지만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동료는 나를 계속 설득했고, 너 정도면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고 자신감을 주었다.
모든 점이 완벽하진 않다
나의 경험들이 인생의 무수한 '점'이 되고, 그 점들이 우연한 기회에 연결되며 '선'이 되고, 그게 다시 '도형'이 된다. 정말 상상만 해도 너무 멋지고 경이로운 광경 아닌가? 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점들이 찍히는 순간은 매우 불안정하며 서투름의 연속이다.
나는 일단 수업하기로 한 학교에 인터뷰를 했고, 다행히도 인터뷰는 잘 통과해서 이제 수업 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에게 3시간 동안 학생들 앞에서 혼자 말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막연한 공포감이 있었다. 보통 회사에서 디자인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아무리 길어봤자 20분을 넘지 않는다. 당연히 내가 작업한 내용이니 잘 연습만 하면 크게 문제 될 일이 없었다.
질문을 받는 시간이 오면 그에 맞는 대답을 하면 된다. 하지만 수업이란 건 준비해 보니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학생으로 교실에 앉아있을 때는 선생님들이란 그냥 그 내용이 다 머릿속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 내용이 입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내가 만난 그 어떤 선생님들이나 교수님들이 떨면서 내용을 제대로 설명 못한 일은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음, 내가 최초가 될지도 모르겠군." 나는 생각했다. 악몽에서 꾸던 것처럼 말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하얘지는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거라 확신했다. 이런저런 고민과 걱정으로 잠을 설쳤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너무 정직하게 흘러서 약속했던 개강날짜가 다가왔다.
나는 일단 3시간 동안 프레젠테이션 한다는 마음으로 그날의 강의를 몽땅 외우다시피 준비했다. "그래! 나는 무대 위에 오르는 배우야. 지금 잘 외운 이 대사를 잘 전달하면 되는 거야!" 이렇게 각오를 다지며 생각했다.
"대신 연기를 아주 잘해야겠어.
아무도 내가 떨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