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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디자이너 Jun 08. 2024

왜 마음이 끌릴까?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즐거움

나를 알고 싶다


 30대가 접어들면서 점점 '나를 더 잘 알고 싶다'라는 욕구가 생겼다. 그 생각의 시작점으로 돌아가보면, 그즈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디자이너라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그 길로 걸어가고 있으니 인생의 큰 고민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살아있다는 자체가 고민이라는 말처럼, 또 마음속 질문이 떠오른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여기저기 헤매다 보니,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 '나' 자신이었다. 결국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알아야, 그다음 방향이 정해지는 것이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과 있을 때 가장 행복한지, 나의 취향은 어떤 것이 있는지, 나에 대해 알아가야 할 것이 참 많았다.


 그렇게 서른부터 지금까지 10년의 시간은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알아가는 여정이었다. 물론 살아가는 내내 이 여정이 이어지겠지만, 그 시작점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처럼 교과서가 있는 게 아니기에, 답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책 속의 말들을 찾아 헤매고, 멘토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과 밤새 이야기 나누어보고, 이런저런 성격검사, 취향을 파악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까지, 참 많은 것을 해보았다.


 '깊은 인연' '성장'


나는 어떤 걸 중시하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에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주욱 적어 내려갔다. 가끔 시간이 날 때마다 그저 노트에 끄적였는데, 그때마다 공통적으로 나온 단어 두 가지가 바로 저 두 가지였다.


깊은 인연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많은 의미를 두는 편이다. 십 대 때는 지나치게 타인과의 관계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나를 소진시켰다. 이십 대 때는 너무 소진시켜 버린 마음을 회복하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나 스스로에게 집중했다. 삼십 대가 되니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마음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 스스로 사람을 대하는 법은 계속 변화해 왔지만, 감사하게도 참 많은 인연들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10년, 20년이 된 인연들을 지켜내며 그들의 삶에서 단단하게 존재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아주 큰 가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인연을 쌓고, 서로의 마음 한편을 내어준다는 그것의 위대함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냥 내 자리에서 잘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내 자리에서, 당신은 당신 자리에서, 서로의 삶을 지켜내며, 서로를 응원하는 것이 내 삶을 이끌어 가는 삶의 원동력이 된다.


성장


 모든 인간에게 성장은 본능이라고 한다. 나도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갈망이 항상 있었고, 20대 때는 약간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성장에 집착했다. 나의 꿈을 위해 도전하던 20대 시절은 참 행복했고, 그 덕분에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성장이란 나 스스로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성장만을 꿈꾸던 시기가 지나니, 나는 이제 '타인'의 성장이 궁금하다. 누군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이끌어주는 삶도 너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성장을 돕는다고 하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나 또한 많은 것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 함께 성장해 나간다.

 

마음이 끌린다


 우연히 미국에서 강의라는 걸 시작하게 되었고, 처음엔 그저 잘 해내야겠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비영어권인 내가 과연 미국인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컸고, 아직 디자이너로서 경력이 짧다는 생각에 누군가를 가르칠 내공이 안된다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서툴지만 한 걸음씩 나아갔고, 그 과정에서 '가르치는 일'이 나에게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를 가로막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자 수업하고 학생들과 소통하는 그 자체가 즐거워졌다. 대학원 강의를 시작하면서 더 확실히 느낀 건 내가 수업을 하는 그 순간에는 참 자연스럽고 나답게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내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듯이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처음엔 참 신기했다. 디자인 회사를 다닐 때, 그저 열심히 다녔지만 그 자리가 나에게 잘 맞는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기에 이런 느낌이 참 새로웠다.


대학원의 첫 학기를 마치고 강의 평가서를 받고 얼마 뒤, 대만에서 유학 온 학생인 후아웬에게 이메일이 왔다. 언제나처럼 다정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긴 글을 보냈다. 처음에는 너무 자신감이 떨어져 다 포기하고 대만으로 돌아가야 할까 고민했었다는 말로 글을 시작했다. 그때 내가 겪었던 쉽지 않던 대학원의 경험담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때 내가 견디다 보면 조금씩 나아진다는 말을 할 땐 반신반의했는데, 지나고 보니 정말 사실이었다고 고맙다고 했다. 또한 영어권이 아닌 내가 교수로 강의를 하는 모습이 자신에게는 롤모델처럼 느껴졌고, 큰 힘이 되었다고 쓰여있었다.


'아, 나의 완벽하지 못하고 부족한 면이 누군가에겐 힘이 되는구나.' 조금씩 나아지려고 서툴지만 애쓰는 나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용기를 줬음이, 너무 기뻤다. 진심이 담긴 편지를 읽고 나니, 그제야 내가 가르치는 일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르침'을 통해 나는 학생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고,

그 모든 소통은 '깊은 인연'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제 또 다른 질문을 한다.

'잘 가르친다는 건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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