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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디자이너 Jun 09. 2024

잘 가르친다는 건 무엇일까?

질문하면 언젠간 답을 얻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묻다


나는 우여곡절의 첫 학기를 끝내고, 조금 덜한 긴장감으로 두 번째 해 수업을 시작했다. 이땐 개인적으로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사실 잘해보겠다는 마음보단, 어떻게든 별 탈 없이 마무리하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학기 중간에 가족문제로 한국에 가야 해서 화상으로 수업을 진행하며 혹시라도 수업에 지장이 될까, 걱정을 많이 했다. 첫 학기보다 더 경력이나 실력이 다양한 학생들이 많아서 이들을 이끄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렇게 두 번째 해가 가고, 세 번째 학기도 무사히 마무리했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반 백수 상태에서 했던 마지막 학기가 가장 좋았다. 온전히 학생들과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바쁘게 달리던 나를 멈추고 순간에 집중한다는 것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그저 우연한 기회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이 길에 내가 진지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냥 시간을 채우는 그런 강의가 아닌, 의미 있는 수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매년 같은 수업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내년에는 올해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수업을 하고 싶었다.


'누가 가장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을까?'


당연히 직접 나의 수업을 들은 학생 들일 것이다. 다행히도 그들과 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연락해 볼 학생들이 많았다. 나는 개인적인 리서치의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졸업생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특히나 디자인 전공이 아니었던 친구들이나 초반에 유난히 헤매던 학생들에게 집중적으로 연락했다. 내가 대학원 과정을 전부 바꿀 순 없겠지만, 그들의 의견이 궁금했다. 어떤 지원이 더 있었다면 좋았을지, 또한 나의 수업에서 어떤 면이 부족했는지 물어봤다.


이런 질문 처음이야


 리서치라는 거창한 이름을 두고 진행했지만, 사실은 그저 졸업한 학생들의 안부가 궁금했고 그들이 나의 수업에 대해 느낀 점을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고맙게도 여러 학생들이 1시간 정도의 시간을 내서 나와 화상으로 만났다. 그냥 적당히 "좋은 수업이었어!" "다 괜찮았어"라는 말로 지나가려 내가 서로에게 귀한 시간을 낸 게 아니란 걸 학생들은 알았다. 더 좋은 수업을 하고 싶다는 나의 진지한 마음이 느껴졌는지 학생들도 구체적인 피드백을 주었다.


 또한 미팅이 끝나고도 이메일이 와서 아이디어를 주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면서 평생 학교에 오래 다녔지만, 이런 질문을 받은 건 처음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이나 교수님들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은 없었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보내는 '강의평가서'가 아닌 교수님들이 정말 궁금해서 나에게 수업에 대해서 묻는 경우는 없었다.


내가 맞거나 그들이 틀리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왜 이토록 좋은 수업을 하려고 노력하는지에 더 집중하고 싶다.


'나는 왜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을까?‘


나에게 묻다


잠시 회사를 쉬게 되면서 나의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10년 동안 해왔던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조금 방향을 바꿔 다른 길을 가봐야 하는가? 이 두 질문이 나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지난 몇 년에 걸쳐 기존에 해왔던 일에 회의를 느낀 것이 가장 큰 원인이고, 새롭게 경험하게 된 가르치는 일에 깊게 빠지게 된 것도 영향을 끼쳤다.


내가 이런 고민을 나누자, 주변 지인들이 그럼 정교수의 길을 알아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그 자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둘째 치고, 나는 지금 나의 경력과 능력으로 좋은 교수가 될 거라는 확신이 없다. 정말 운이 좋게도 그런 자리를 얻게 되더라도, 내가 정말 질 좋고 의미 있는 수업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인생을 살면서 존경하는 선생님들과 교수님들도 많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이 경험했다. 그들의 수업은 공허한 지식만 떠다니는 일방적인 울림이었다. 직업으로서, 밥벌이로서 가르치는 그 이상의 노력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수업을 들으면 그들의 텅 빈 영혼이 느껴지곤 했다. 물론 나도 10년, 20년을 같은 일을 하게 되면 그렇게 변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나를 가장 두렵게 만들고, 나의 노력으로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모습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피곤하게 산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나에게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매사에 진심으로 살 수 없는 거라고 말한다. 나도 그들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 때로는 적당히 그냥 지나가야 하는 순간들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것이 나의 삶의 태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잘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계속 질문할 것이다.

언젠가 답을 찾을 때까지.




그동안 부족한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로 다시 만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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