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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디자이너 Jun 02. 2024

태어나 처음 해보는 짝사랑

나는 당신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그분들도 그랬을까?


역시 사람은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아야 한다. 내가 학생일 때 알지 못했던 것들, 그 당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내가 가르치는 입장이 되고 보니 너무나 많이 느껴진다. 학생 때는 당장 내 프로젝트에 고민으로도 마음이 바빴고, 불확실한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만으로도 벅찼다. 그래서 그때 내가 받았던 지지와 관심에 대한 감사를 잘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정성을 들인 좋은 수업을 들을 때면 생각했다.

 "이건 당연히 교수들이 해야 하는 일 아니야?"


물론 맞는 말이다. 학생이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듯이,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한 사람으로서 좋은 수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강의 시간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만들 수 있을까, 고심하고 고심해서 수업을 준비하는 교수님들이 있다. 자신이 아는 인맥을 모두 동원해서 학생들의 작품 평가를 부탁하고, 그들과의 인맥을 쌓도록 도와주던 교수님들. 자신의 개인 시간까지 내어주며 나의 프로젝트를 함께 고민해 주던 교수님들.


내가 그들의 입장이 되어 학생들에게 이런 수업을 제공하려 해 보니, 내가 상상하던 것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작 일주일에 3시간만 학생들을 만나지만, 강의준비와 일주일 내내 연락이 오는 학생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는 걸 모두 합치면, 강의 시간의 몇 배가 더 드는 시간을 투자하게 된다.


또한 하나의 학과가 순조롭게 운영되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나는 겸임교수로서 학교에서 요구하는 이런저런 행정일을 전혀 보지 않기에 이런 진 빠지는 일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과가 유난스러운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수들끼리 대화하며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진행 사항이나 우려할 점이 있는지 확인한다.


나의 진심이 느껴졌을까


내가 처음 학과 교수들이 모두 모인 미팅에 갔을 때 학과장이 해준 말이 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 나의 스승이기도 했던 그녀는 나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지나치게' 열심히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씩 깨닫고 있는 것이지만, 무엇이든 지나침은 오히려 독이 된다.


미팅이 끝나갈 무렵 나에게 말했다.

"너무 열심히 하진 마"


농담처럼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 말을 하는 그녀의 눈빛은 진지했다. 이제 막 시작한 내가 너무 지나친 열정으로 혹여나 지치진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해준 말이었다. 이 당시 나도 번아웃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던 참이라 그 말을 잊지 않으려 학기 내내 되새겼다. '너무 열심히 하진 말자.' '너무 지나치게 이 일에 집중하지 말자' 이렇게 나 자신에게 상기시켰다.


나름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했고, 이것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처음에 이런 말을 듣지 않았다면, 너무 쏟아부어서 지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지나치게 마음을 쓰거나 개인 시간을 최대한 쓰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도움이 필요해서 연락 오는 학생들은 한 명 한 명씩 모두 챙겼다. 알아서 잘하는 학생들보다 조금 뒤처진 학생들에겐 더 많은 관심을 주었고,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얻은 작은 노하우도 모두 나누었다.


그렇게 개개인과 관계를 쌓아가면서,

나는 내심 궁금했다.


'나의 진심이 가닿았을까?'

'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정한 성격의 학생들이 많아서 매번 너무 고맙다고 얘기하는 건 들었지만, 나는 궁금했다. 이들이 나의 수업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리고 어떤 면을 좀 더 개선했으면 하는지 말이다. 어떤 날은 이런 게 혼자 짝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일까 싶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 그런 성격 탓인지 초등학교때 해본 어설픈 짝사랑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짝사랑 같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피드백 없이 혼자 애정을 표현하면서 학생들을 짝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Role Model


매 학기가 끝나면 학생들의 강의 평가서가 나에게 날아온다. 주립학교답게 아주 체계적이고 꼼꼼한 질문들이 있어서 학생들의 객관적 의견을 들을 수 있다. 마지막 페이지는 학생들이 강의에 대해 느낀 점이나 교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적혀있다. 첫 강의가 끝나고 이걸 보는데 어찌나 떨리던지, 천천히 마지막 페이지를 열어보았다.


 보통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귀찮아서 따로 코멘트를 남기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나는 16명의 학생 중 13명의 학생이 꽤나 긴 메시지를 남겼다. 대부분 내가 학생들을 얼마나 진심으로 생각하고 자신들의 성공적인 프로젝트 완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이끌어 주었는지에 대한 감사의 말이었다. 내 앞에선 쑥스러워서 인지 그저 땡큐! 이 정도만 하던 학생들인데, 이렇게까지 마음 깊고 따듯한 말들을 남겨줄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익명으로 진행되어 누가 남긴 지는 알 수 없지만, 유독 기억나는 피드백이 있다.


"Something about professor Kang is very transparent, I'm not sure how to explain it. But she really enjoys teaching us, and I think she's extremely special in the way she pushes us without telling us exactly what to do. I have to say she's been my favorite class with learning how to make a true exhibition project from start to finish."


"이 교수님에겐 뭔가 아주 투명한 점이 있어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녀는 정말 우리를 가르치는 일을 즐기고, 우리가 정확히 뭘 해야 할지 말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를 자극하는 아주 특별한 면이 있어요. 그녀와의 수업은 진정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전시 프로젝트를 배울 수 있었던 내가 가장 좋아했던 수업이었어요."


내가 조금 직설적으로 주었던 피드백에 상처받진 않았을까 하고 걱정했는데,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런 피드백이 자신을 푸시하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게 했다고 말했다. 또한 진심으로 자신들의 성공을 위하는 게 느껴졌다는 말들이 너무 고마웠다.


짝사랑하던 사람의 '나도 너를 사랑해!' 정도의 고백은 아니었지만, ‘나도 너를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쯤의 마음을 들은 기분이랄까. 이 온기 가득한 말들은 오랫동안 나의 마음을 따듯하게 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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