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아이는 양가에서첫 손주였다.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우리 가족의 최고 이슈였다. 큰 사랑만큼 간섭도 심했었는데...
나의 결혼생활에서 시아버지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출산 전에는 며느리에게 다정다감하고 유머러스하신 분이셨다. 그러나 세상에서 제일 손녀를 키우는 양육자로 나를 여기시면서 입장이 아주 달라지셨다.
먹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아버님은 매번 아이의 기저귀를 살펴보셨다. 소화가 되지 않고 배설된 무언가가 있다면 바로 잔소리로 이어졌다.
"아직 현미는 소화가 안되니깐 먹이지마라"
"블루베리는 좀 잘라주지 그랬니"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첫 손녀이기에 그 마음을 이해해보려 노력했지만, 솔직히 정말 화가 나는 순간도 많았다. 특히 아이가 아프거나 다칠 때에는 아버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나에게 짜증섞인 잔소리로 이어졌다. 어찌나 서럽던지.
지금은 아이를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마음이 너무 감사하지만, 그땐 한없이 미숙했던 나였기에 아버님에 대한 불만이 날로 커졌었다. 특히 내가 제일 신경썼던 식습관! 돌아다니면서 식사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식사는 자리에 앉아서 차분하게 먹기!
그러나 아버님이 계신 자리에서는 이게 불가능했다.
"뭐 어떠냐, 밥만 잘먹으면 됬지.
OO아~ 할아버지 있을 때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거라~"
식탁에 앉아 잘 먹는 아이였다. 그러나 할아버지댁만 가면 돌아다니기 바빴다. 아버님은 음식을 들고 아이를 쫓아다니며 먹여주셨다. 그게 얼마나 꼴보기 싫던지..
할아버지댁에 다녀온 다음 날이면 식습관이 엉망이 된 아이의 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책의 저자이신 박혜란 할머니는 이적 엄마로 유명한 분이다. 아들 셋이 모두 서울대에 간것으로도 놀랍다. 그리고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서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자기가 후회했던 부분이나 젊은 엄마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이 책에 적으셨다.
미숙했던 엄마의 뒤늦은 후회를 조금이라도 만회하려고 난 젊은 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간곡히 부탁한다. 이만큼 살아보니 아이들을 키우는 시간은 정말 잠깐이더라. 인생에 그토록 재미있고 보람찬 시간은 또다시 오지 않는 것 같더라. 그러니 그렇게 비장한 자세를 잡지 말고,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고, 마음 편하게, 쉽게, 재미있게 그 일을 즐겨라. 생뚱맞게 들리겠지만 부모 마음으로 키우지 말고 손주 보듯해라. 그러면 만사형통이려니.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p9
마음 편하게, 쉽게, 재미있게 아이를 키우는 순간을 즐기라는 이야기. 부모 마음으로 키우지 말고 손주 보듯하라는 말씀이 우리 아버님을 보고 이해가 되었다. 분명 남편을 키울때는 그러지 않으셨을 거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되어서 첫 손녀를 바라보니 얼마나 사랑스러우셨을까.
아이가 밥을 돌아다니면서 먹는게 뭐 중요하겠냐. 성인이 되면 앉아서 식사하는게 당연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엄마가 아이보다 더 오래 살았으니 아이보다 더 잘 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나이가 반드시 혜안을 만들어 주진 않는다.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고 싶다면 내 생각은 과연 얼마나 훌륭한지 성찰하고 또 성찰해야 한다.
아이 키우는 가장 큰 소득은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나도 덩달아 커 가는 게 아닐까.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p87
나는 아이를 낳고 천사같은 아이의 모습에 새로운 사랑을 느끼기도 했지만, 내 삶을 희생한다는 마음이 컸다. 아가씨때는 뭘해도 반짝반짝 빛나던 내 인생이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아이를 낳기전까지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후에는 뭐하나 내맘대로 되는게 없었다. 밤에 잠을 못 자는 건 기본이요, 똥 타임도 매번 놓쳐 속이 불편했고, 화장실에 가는 순간 마저도 아이와 함께 였다. 화장실 문을 열고 대변을 보며 정말 내 인권은 어디로 갔나 싶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아이 둘을 낳은 후, 처음으로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독서코칭에서 내 삶을 새롭게 들여다보게 되었고, 처음으로 "너가 좋아하는 게 뭐야?" 라고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내 유년기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그때 받은 상처를 가리기 위해 아직도 내 마음이 힘들었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책에 나온 문구처럼 아이 키우는 가장 큰 소득은,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덩달아 나도 커 가고 있는 것이었다. 내 분노의 끝은 어디까지 인가를 체험하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화가 많았구나'를 새삼스레 깨달으며 내 인생을 다시 되돌아보았다.
그동안은 몰랐지만 시간에 쫓길때 가장 초조해지는 나의 모습을 아이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과 같이 성장하고 있는 초보엄마이다. 그리고 더 이상은 아이를 낳아서 내 인생을 희생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상처 많았던 내 유년기를 내 아이들과 함께 다시 한번 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 때 받지 못했던 사랑을 지금의 내 아이들과 주고받으며 제2의 유년기를 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