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섭 Jun 16. 2020

발달장애아이 아빠가 되다

이제는 마음이 목표다.

내 인생은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아들이 진단받기 전과 후로.


진단 전에는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다. 초중고, 군대, 대학교도 별 탈 없이 보냈고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도 하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딸과 아들도 낳고.


진단 후에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아들이 장애인이지만 아들을 대신해서 내가 장애인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아들은 본인이 장애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장애는 없지만 장애인으로 사는 사람들이 바로 발달장애인 부모다. 발달장애인들은 세상과 소통이 힘들다. 자기주장이나 생각을 말하기 쉽지 않고,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신경 감각이 우리와는 달라서 스스로를 통제하기 힘들 때도 많다. 그런 발달장애 자녀 대신 법적, 경제적, 행정적 일을 대신해야 하며, 그들의 권리와 복지를 위해 대신 집회에 나가기도 한다.

발달장애인 삭발식 집회에 가보면 발달장애인이 삭발하지 않는다. 발달장애 자녀를 위해 그들의 부모가 삭발하지 않는가?


진단 후 내 삶의 목포는 아이를 비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은영 원장님, 천근아  연대 교수님, 김붕년 서울대 교수님, 유희정 서울대 교수님 등 많은 소아정신과 교수님들께 진료를 받았고, 유명하다는 발달 치료 센터에서 최선을 다해 치료받아왔다.


발달장애는 불치병이란 걸 알면서도 고치려 노력해왔지만 이젠 목표를 바꿀 때가 왔다.


“아이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것이 핵심이다.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거나 교육적인 관점으로 다가가기 보다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어야 한다.”


서울대 김붕년 소아정신과 교수의 말이다.


상처로 아파하는 아이를 위해 목표를 머리에서 마음으로 변경했다.


11살인 아들은 40년 이상 산 나보다 더 많은 상처를 받았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은 초중고, 대학교, 대학원까지 나온 나보다 더 많은 무시와 조롱과 멸시를 학교에서 받았다.


하루 중 눈물 날 때가 두 번 있다. 첫번째는 아이 등교하는 뒷모습 볼 때이고, 두번째는 하교하는 모습 볼 때다. 다른 사람은 반기는 그 시간이 내게는 너무 슬픈 시간이다. 물론 아이도 잘 알고 있다. 아빠가 자기가 학교에서 놀림받고 다니는 것 때문에 슬퍼한다는 것을…


이제 아이를 더 사랑하며 살 것이다.

더 바라봐주고

더 안아주고

더 공감해주고

더 이해해주며 살 것이다.


친구가 없는 아이를 위해 친구로, 그리고 무한정 사랑하는 부모로 행복하게 같이 살다 한날 하늘나라로 떠나고 싶다.


“너를 사랑하는 일이 어려웠지만 너무 행복한 일이었다.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해 너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