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원은 아들과 함께 하늘나라 가는 것 입니다
2000년 무렵 석관동 다세대 주택 반지하에 살던 선배에게 다급하게 찾는 전화가 왔다. 한걸음에 달려가 보니 가슴까지 흙탕물이 차올라와 있었고 선배는 쓸만한 것들을 홀로 옮기고 있었다. 같이 뛰어들어 살릴만한 것들을 옮겼다. 시간이 지나니 모르는 사람들이 같이 짐을 날라 주었다. 다 젖은 옷가지, 이불, 가전 등을 좁은 골목으로 치우고 나니 어디선가 주황색 호수가 연결된 펌프 두 대가 물을 빼고 있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니 물이 다 빠졌다. 그제야 같이 고생해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같은 다세대 주택 2층, 3층 분들이었고 그분들 중 한 분이 자기 펌프를 트럭에서 가져와서 도와주었던 거다. 그 날 일을 쉬고 얼굴도 몰라보는 지하방 이웃을 도와준 것이다. 우린 그분들을 모시고 삼겹살집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고마운 분들의 인생살이를 소재로 몇 시간 술을 마시고는 그분들은 다세대 주택 2, 3층으로 우린 석관초 강당으로 향했다.
그 반지하는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집과 비슷했다. 특히 화장실 변기는 너무 똑같아서 영화관에서 소리 지를 뻔했다. 암튼, 며칠 집을 말린 뒤 도배와 장판을 선배와 직접 하고 일을 마무리 졌다.
최근 새로운 과외 학생을 소개받았다. 평생 학원을 다닌 적이 없었는데 전문대라도 가고 싶어서 친구 소개로 찾아왔다고 했다. 수학 말고도 어떤 과목도 공부를 한 적이 없었다. 바로 가르칠 시간이 없다고 하려고 했으나 그럼 남아있는 희망까지 없애는 것 같아 스케줄 정리되면 연락 준다고 했다. 그 학생을 뒤로하고 지금껏 맘이 편하지 않았다. 사정을 잘 모르긴 해도 그 학생의 무언가가 나에게 전이된 느낌을 받았다. 예전 선배의 반지하에 흙탕물이 내 몸에 가득 스며들던 느낌.
그 학생을 만난 뒤 내가 가르치는 모든 아이 수업 중에 보드마카를 일부러 두 번 떨어뜨렸다. 책상 위에 한번, 바닥에 한번. 그리고는 말했다. ‘너의 바닥은 책상이지만 어떤 아이들의 바닥은 더 아래 더러운 바닥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더 아래 지하 바닥일 수 있다’고.
언젠가 tv에서 고아들은 보통 자신이 머물렀던 보육원 근처를 평생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에게는 그곳이 유일한 고향이고 가족인 것을 난 알지 못했었다.
지금은 내가 아픈 아들의 바닥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그가 추락한다 하더라고 내가 그를 받쳐주고 일으켜 세워 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죽고 나면, 내가 죽고 나면 누가 그의 바닥에 되어 줄 것인가?
누가 반지하에 홀로 살 아들을 달래줄 것인가? 이런 물음들이 다가올 때마다 너무 슬퍼진다.
반지하에 살던 선배는 국가연구소의 책임 연구원이 되었다. 고된 삶이었지만 기꺼이 바닥이 되어 준 누군가가 항상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가 떠나고 내 아들의 바닥이 되어줄 누군가에게 미리 고개를 숙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