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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일까 배려일까

우크라이나 출신 동료와 함께한 비행

by 캐롤라인


요새 비행을 가면 이코노미 클래스 승무원들 중에 내가 가장 사번 (staff number)이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면 두 번째로 높거나.



이번 비행에도 사번이 제일 높아서 갤리(비행기 부엌)를 맡게 되었다. 매 비행마다 역할이 정해지는데 대부분 사 번에 따라 사무장이 역할을 정해준다. 사 번이 높을수록 (경력이 많을수록) 갤리를 주는 이유는 갤리가 제일 복잡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또 해당 승무원에게는 그만큼 주어지는 책임도 많다. 갤리 담당하는 승무원이 잘 모르고 우왕좌왕하게 되면 서비스에 늦거나 준비가 미흡해질 수가 있고 그러다 보면 서비스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매 비행에서 모든 승무원들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하게 되는데 바로 “No Drama”이다. 그날의 서비스와 비행 플로우를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사무장들은 경력 많은 승무원들에게 갤리 담당 포지션을 주곤 한다.



이번에 날 도와준 동료는 우크라이나 키예프 출신이었다. 요새 우크라이나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두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괜히 조심스러웠다. 특히 출신이 다른 도시도 아니고 키이우(키예프)라고 하니 더더욱



비행기 이륙과 착륙시간에 마주 보고 앉는 자리를 맡게 돼서 서로 이야기하다가 고향이랑 가족 얘기를 물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됐다. 한국에서는 힘든 일이 있을 때 물어보지 않는 게 예의지만 외국에서는 물어보는 게 그 사람을 케어 (care) 해주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는데 처음엔 얘기하면 눈물 날 것 같으니 물어보지 말아 달라고 하길래 알았다고 마음 편한 대로 하라고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런던 만석 비행이어서 아무래도 둘이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여동생이 의사라고 하던 그 크루는 우크라이나에서 여자여도 직업이 의사면 산부인과, 피부과 종목과 관계없이 출국 금지명령이 내려와서 동생을 못 데리고 온 게 너무 마음에 걸린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자기 러시아랑 벨라루스 출신의 친한 친구들이 많은데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자기한테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어서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모른다는 말과 함께



며칠 전 다른 우크라이나 출신 동료랑 비행을 했을 때,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러시아랑 우크라이나 전쟁 날 것 같아?”



라는 질문에 그 동료는



“남한이랑 북한 전쟁 날 것 같아? 그 질문은 이 질문이랑 같아”




라고 대답해주면서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푸틴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위협 정도에서만 끝날 것이라고 얘기해줬었다.




아부다비로 돌아오는 비행에서도 전 날 잠은 잘 잤는지 (3일 동안 두 시간도 못 잤다고 들었음) 밥은 먹었는지 가족들은 잘 있는지 나뿐만 아니고 다른 동료들도 이런 얘기를 해주면서 그 동료가 적어도 일할 때 만이라도 최대한 마음 편할 수 있게끔 배려해주었다. 한국이라면 오지랖이라고 얘기를 듣지 않았을까? 오지랖인지 배려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우크라이나 편이다”라고 그 동료가 느끼게끔 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았다.



다음 주에 가기로 되어있었던 모스크바 비행은 당연히 취소되었다. 얼른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서 심난한 이 상황이 잠잠해지면 좋겠다.




“우크라이나의 주권, 영토 보전과 독립은 존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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