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트레이닝을 받을 때 회사에서는 비즈니스 클래스나 로열티 프로그램 승객들의 이름을 최대한 불러주라는 내용을 많이 강조했다. 플라이두바이 재직 시절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내용이어서 신선하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스타벅스를 제외하고는 성함을 얘기하는 것이 실례(?)이기 때문에 이런 문화가 처음엔 이해가 안 됐었다.
이번에 다녀온 시드니 비행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비행이었는데, 얼마나 힘들었냐면 19시간 스테이 동안 호텔에서 잠만 자느라 아무것도 못했을 정도였다. 한인마트 가서 다 떨어진 김치랑 햇반이랑 라면 사 와야지, 아침은 시티에 있는 브런치 카페 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셔야지, 호텔 앞 울월스 가서 민트 초코 킷캣이랑 라이스 크래커를 사 와야지라고 생각했던 나의 계획이 허무하게 낮 12시 웨이크업 콜을 받고 깼다.
7월의 시드니는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엄청 추웠고, 잘 자고 푹 쉬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고 출근을 했다.
이번 비행은 이상하게(?) 메디컬도 없고 다수를 차지해 날 힘들게 하는 그 인종도 별로 없었다. 대부분이 영국이나 아일랜드를 가는 백인 사람들이었는데 특징은 어린이 승객이 많다는 것 (50명 정도), 기내에서 물을 엄청 많이 마신다는 것, 그 결과 화장실을 엄청 자주 간다는 것, 그리고 필요한 게 있거나 화장실에 뭐가 없거나 하면 바로바로 얘기를 나이스 하게 한다는 것.
시드니 비행은 걸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발바닥에 땀이 나게 뛰어다니는 바쁜 비행인데 이번 비행에서는 그걸 승객들도 안다는 듯이 콜벨보다는 갤리에 와서 필요한 걸 직접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한 승객이 갤리로 와서 스카치 콕 (위스키+콜라)을 주문했다. 한 번이 아니고 세 번이나 갤리에 와서 물어보길래 얼굴을 알고 있었는데 두 번째 서비스 시작할 때 기억나서 “스카치 콕 줄까?” 했더니 “오 기억해? 너무 좋지~” 하더니 고마워했다.
다음번 서비스에서도 내가 담당하는 구역이어서 같은 승객한테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도 스카치 콕 줄까?”
“너무 좋아! why not! 애는 자고 있고, 내가 좋아하는 팀이 하는 농구 경기 보는 중인데 스카치 콕하기 완벽한 시간이야. You make my day. 기억해준다니 너무 고마워.”
내가 한 건 승객이 스카치콕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recognize, 알아본 것 밖에 없다. 자기 스카치콕을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며 농담을 하던 그는 막판에는 내 이름도 묻고 그 와이프랑도 얘기하고 엄청 깔깔 거리며 대화를 했다. (스카치 콕 마신 거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라고 얘기했다가 옆에 있던 와이프가 빵 터져서 순조롭게 스몰 톡이 오고 갔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상대방의 이름을 바로 묻는 경우가 드물다. 그 사람을 알아보는 것을 상대방이 부담스러워 할 수 있기에 조심스럽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을 묻는 스타벅스 (이것도 미국에서 온 문화) 외에는 손님의 이름을 묻는 카페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오히려 카페 사장이 자길 알아보면 부담스러워서 더 이상 거긴 못 가겠다고 하는 친구들의 얘기는 숱하게 들었다.
알아도 모르는 척해주는 게 미덕인 한국 (동양) 문화와 날 알아봐 주길 바라는 서양 문화. 당신에겐 어떤 게 더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