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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숙소에 사는 것에 대한 고찰

by 캐롤라인

보통 중동 항공사에 외국인 승무원으로 입사하게 되면 저가 항공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프리미엄 항공사에서는 숙소를 제공해 준다. 에미레이츠항공, 에티하드항공, 카타르항공, 걸프항공, 오만항공, 쿠웨이트항공 등등



나는 아랍에미레이트의 국영항공사인 에티하드 항공에서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다른 항공사도 합격했는데 에티하드 항공 입사를 선택하게 된 이유 중에 하나로 회사 사택 제공이 컸다. 특히 에띠하드 항공은 중동 모든 항공사를 통틀어 숙소가 가장 좋기로 유명한데.. 회사 사택에서 무료로 사는 게 정말 좋은 점만 있을까? 오늘은 여기서 오는 장단점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한다.





장점 1. 모든 게 다 무료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은데 사택에 살게 되면 내가 숙소 안에서 쓰는 모든 게 무료다.


에어컨을 포함한 전기세, 수도세가 무료인데 이 나라는 에어컨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자취할 때보다 절약되는 부분이 많다. 두바이에서 원룸에 혼자 살 때 전기세만 보통 십만 원~십오만 원 정도 냈었는데 에어컨을 많이 사용하는 계절인 여름엔 훨씬 더 많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2018년 기준, 환율이 지금보다 낮았던 때)


내가 지금 혼자 따로 내야 하는 건 인터넷 비용 하나인데, 플랫 메이트가 두 명이라 셋이서 같이 셰어 해서 내고 있다.


두바이에 혼자 살 땐 옆집에 사는 선배 언니랑 같이 셰어 해서 냈었다.


또 사택에 살면 회사에서 셔틀버스도 제공해준다. 회사-집 구간이랑 트레이닝이 있을 시에는 트레이닝 아카데미-집 구간도 당연히 제공해준다. 즉 자잘한 교통비도 안내도 된다.


이렇게 회사에서 많은 걸 제공해주면 신경안 써도 되는 부분이 많아진다. 작게는 택시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공공기관 일 처리까지… 자취하게 되면 모든 이슈를 나 혼자 처리해야 한다. 외국에서 살면서 나 혼자 이 모든 이슈를 처리하는 건 쉽지 않다. 주변에 친구들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몫이기 때문에.. 또 외국 나와서 느끼는 점은 한국만큼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가진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뭐 하나 처리하러 여기 가면 저리 가라 하고 저기 가면 다른 데 가라 하고 지난날 혼자 왔다 갔다 얼마나 많이 했는지… 난 외국에서 혼자 살면서 이 부분에 진절머리가 났었고 비행도 힘든데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스트레스를 오프 때까지 받아야 하나 싶어서 무조건 회사에서 숙소를 제공해주는 곳으로 옮겨야겠다고 결정했었고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





장점 2. 1인 1 마스터룸 제공.



에티하드 항공 기준 1인 1 마스터룸이 원칙이다. 예전에 화장실을 공유해야 하는 숙소도 있었는데 현재는 대부분 1인 1 마스터룸 제공으로 알고 있다. (뉴 조이너 제외) 어릴 적 화장실을 공유해서 살아본 적 있는데 개인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니 만큼 화장실은 무조건 따로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또 기본적인 것 (샤워 후 머리카락 치우 기라던가 쓰레기 치우기 등등)을 안 하는 플랫 메이트를 만나게 되면 싸움 나는 건 시간문제… 적당한 거리 유지를 위해서는 화장실을 따로 쓰는 게 필수적이라고 본다. 숙소를 제공해주지 않는 회사에 입사해 경제적인 부담감에 플랫 메이트와 화장실을 공유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봤는데 좋게 마무리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모든 인간에겐 개인적인 공간과 시간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기에 회사에서 화장실 딸린 마스터룸을 제공해주는 건 엄청 큰 장점이라고 본다.



단점 1. 랜덤으로 배치되는 플랫 메이트, 거실과 주방은 공용공간



회사에 처음 입사할 때는 회사가 무조건 랜덤으로 정해서 숙소를 제공해준다. 선택사항 따위는 없다. 회사가 가라는 곳에 가서 살아야 하며 같이 살라는 애랑 살아야 한다. 입사 후 프로 베이션이 끝나는 6개월 간 이사 금지이다. (중동 항공사 기준)




나는 운이 좋게도 늘 괜찮은 플랫 메이트들만 만난 편이었는데 플랫 메이트랑 치고받고 싸우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서로 증거를 남기겠다며 공용 공간을 더럽게 한 부분을 사진 찍어서 회사에 리포트를 한다던가 플랫 메이트에게 피해를 주려고 친구들을 불러서 일부러 시끄럽게 한다던가… 성향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외국인 플랫 메이트를 만나게 되면 그 강도는 더 심해진다. 시니어 리티가 있는 항공사에 입사한 경우 시니어 크루와 함께 살게 될 수 도 있는데 이 경우 역시 쉽지 않다. 주방과 거실은 공용 공간이기 때문에 플랫 메이트와 셰어를 해야 하는데 내가 선택하지 않은 누군가와 6개월은 무조건 같이 살아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이라 생각한다.





2. 공사 분리가 힘든 점



중동 항공사를 기준으로 숙소 내 수영장과 헬스장이 포함되어 있다. 회사 숙소이니 만큼 가는 곳마다 회사 동료들을 마주칠 수밖에 없다. 가깝게는 수영장, 헬스장, 세탁소부터 멀리는 숙소 근처 슈퍼마켓이나 네일숍까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회사 동료라고 보면 된다. 내가 언제 뭘 입고 나가서 누구를 만나는지 사람들이 알 수밖에 없다. 회사 규모가 작다면 소문이 나는 건 시간문제다. 내가 밖에서 만나는 누군가가 내 친구의 친구일 확률이 매우 높다. 즉 한국에서는 직장동료와 친구의 분리가 쉬웠던 반면 회사 사택에 살게 되면 그 분리가 쉽지 않다. 그리고 난 이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택에 사는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3. 회사의 제약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회사가 제공해주는 숙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회사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방문객이 오면 새벽 세시 전에 무조건 다 나가야 한다던가 이성 친구는 숙소에서 자고 갈 수 없다는 점, 코로나가 터진 뒤로는 방문객 역시 백신 접종과 PCR 음성 결과지를 필수로 보여줘야 한다는 점 등등이 있다.





내 돈 내고 내 집에서 편하게 사느냐, 회사가 제공해주는 집에서 살면서 내 자유에 제약이 생기느냐 그건 본인의 결정이라고 본다. 세상에 완벽한 것도, 정답도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수밖에 없다. 늘 말하듯 본인의 성향과 뭘 우선시하는지를 잘 생각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 사택에 사는 게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돈 한 푼 안 내고 살아서 너무 좋다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유가 없어서 너무 싫다고 할 수도 있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이번에 새로 이사 온 새 집, 100% 만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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