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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항공사 승무원에게 인천 비행이란

휴가로 가기 가장 힘든 노선, 한국 인천행 비행

by 캐롤라인



2018 년 2월 설날을 얼마 앞두고 나는 한국으로 휴가를 가기 위해 에미레이트 항공 두바이-인천행 비행 승객 수를 확인하고 있었다. 외국항공사에서 일하면 가장 바쁜 시기가 세 번 있다. 1-2월 설날 시즌 (중국 춘절), 7-8월 여름휴가 시즌, 12월 크리스마스 및 연말 시즌. 매번 바쁘다는 걸 알면서도 이번엔 혹시나 다르지 않을까 하고 나는 휴가를 늘 매년 설날에 신청을 했더랬다. (그리고 그 슬픈 예상은 적중함)



두바이에 살던 나에게 한국을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가장 최우선 순위는 당연히 에미레이트 항공을 타고 한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편도 10만 원 정도밖에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Staff travel ID 90% 할인된 스탠바이 가격 적용 시)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던 내가 왔다 갔다 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에티하드 항공을 타러 아부다비로 가기에는 비행기 좌석표를 받지 못했을 시에 갖게 되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하지만 그 시절, 라떼는... 에미레이트 항공이 에어버스 380으로 인천에 갔을 시절, 설 연휴에 해외여행을 가는 한국인 승객들로 인해서 이코노미 클래스 420여 석이 늘 만석이었고, 비즈니스 80여 석과 퍼스트 클래스로 죄다 업그레이드해도 탈까... 말까 했던 일이 비일비재했다. 더군다나 타 항공사의 승무원인 나의 우선순위는 가장 낮았고, 에미레이트 승무원들 이름이 하나씩 불려도 난 늘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적이 많았다. 결국 내 이름이 체크인 카운터에서 불리지 않아서 쓸쓸하고 외롭게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그때의 기분이란..





에미레이트 항공이나 에티하드항공의 승객 수는 보통 2-3일 전에 확인이 가능한데, 이 2018년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두바이에서 아시아로 가는 모든 항로가 다 만석이었다. 에미레이트 항공을 확인했을 때 한국 비행 당연히 만석, 일본도 만석, 중국은 비자 때문에 확인 안 했고, 홍콩 대만도 방콕도 다 만석. 에티하드항공을 타고 인천 가는 비행도 만석.



다음날과 다다음날도 계속 만석인걸 보고, 난 인천 비행에 한 번 도전해보고 안되면 바로 그다음 홍콩 비행으로 홍콩에 가는 방법을 택했다. 그 시절 에미레이트 항공이 두바이에서 홍콩 가는 비행 편이 하루에 네 개로 많은 편이었고, 홍콩에서 한국 가는 비행도 많은 편이어서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고 비용도 적게 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인천 비행은 타지 못했고, 몇 시간 뒤 있던 아침 홍콩 비행에 체크인을 했다. 에미레이트 항공에 일하고 있던 친구한테 승객 수를 물어보니 여석이 꽤 있었고, 보딩패스를 받은 뒤 나는 그제야 홍콩에서 인천 가는 아시아나항공 비행 티켓을 구입했다. 편도 20만 원 정도 줬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두바이-인천 섹터 백만 원 내고 풀 페이로 가는 승무원들도 많아서 편도 30만 원이면 나쁘지 않게 간 셈..)





면세도 둘러보고, 보딩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보딩이 계속 늦어졌다. 홍콩에서 한국 가는 비행시간도 아슬아슬하니 내 마음도 초조해졌다. 한참 지난 후 마침내 보딩이 시작되고, 보딩게이트로 가서 내 보딩패스를 보여주니 갑자기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내 보딩패스를 가져가고 스탠바이 보딩패스로 다시 끊어줬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because of technical issue, we changed the aircraft.”



기술적 결함 때문에 좌석 수가 적은 비행기로 바뀌었다는 것. 스탠바이 티켓을 받게 된, 나를 비롯한 에미레이트 항공과 다른 항공사 승무원들은 하염없이 기다리게 되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도 우리를 부르지 않아서 나를 비롯해 화가 난 몇 명의 승무원들이 지상직 스탭에게 따지자, 비행기 기종이 바뀌면서 지금 스태프뿐만이 아니라 승객들도 오프로드(하기) 시키는 중이라고, 너네 스태프인데 이 상황 이해 못 하냐고. 지금 돈 내고 티켓 산 승객 들도 이 비행기 못 탄다고..



한국 휴가만 바라보고 버텼는데, 이 휴가를 가기 위해서 며칠을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홍콩에서 한국까지 가는 비행기표도 이미 끊어놨는데… 이런 상황이 닥치니 나도 모르게 눈물만 나왔다. 결국 그날 난 집에 돌아와서 다음 날 여석이 여유 있는 홍콩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이때 확신했다, 무조건 그만두고 한국 비행이 있는 항공사로 이직할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왜 에미레이트 항공에 지원 안했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난 아마 이 사건을 계기로 에미레이트 항공에 정이 많이 떨어진 게 아닐까 싶다.. (난 에미레이츠 항공에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에미레이트 항공은 코로나 이전 한국인 승무원이 천명에 육박했다. 비행이 아니고 승객으로 한국에 가려면 아무리 에미레이트 항공 승무원이라 하더라도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이미 겪어본 나는 알고 있었다.. 특히 에미레이트 항공 승무원들 사이에서는 시니어 리티에 따라 좌석이 주어지기 때문에 새로 입사한 뉴 조이너 입장에서 이 모든 드라마를 다시 겪을 자신이 없었다.



외국항공사 승무원들에게 인천 비행은 그만큼 소중하다. 경쟁률이 어마어마한 눈치게임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휴가 때 다들 결국엔 한국행을 선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외항사 한국인 승무원들의 TOP 우선순위는 바로 “ICN” 비행이다.




브런치 추천 작가로 이 글은 7만 뷰를 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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