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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에서 나오는 vibe

by 캐롤라인

올만에 동기를 만났다. 2019년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에티하드 항공은 서울에 와서 십여 명의 한국인 승무원을 채용했었다. 그리고 코로나 기간 동안 정리해고를 몇천 명을 해서 반 이상의 동기들이 한국으로 돌아갔다. 운 좋게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인 우리.




내 또래의 친했던 비즈니스 클래스 한국인 승무원들은 이직이나 결혼을 이유로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갔고, 비행에서 만나서 어쩌다 친해진 후배들은 에티하드항공에 1-2년 있다가 다른 항공사로 가거나 한국으로 돌아가서 에티하드항공에 남아있는 친구가 거의 없다. 외항사 승무원에게 친구는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딱이다. 서로 아부다비 있을 때는 같이 친하게 지내도 다들 각자의 삶이 있기 때문에 언제 또 어떻게 멀어질지 모르는.




몇 안 되는 동기랑 올만에 만나니 할 말이 너무 많았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 회사 이야기, 휴가 이야기, 동료들 이야기.. 그중 기억에 남는 건 350 비행 이야기다.






내가 입사할 당시 에티하드 항공은 가장 큰 항공기 에어버스 380의 노선으로 한국을 선택하면서 랭귀지 스피커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한국인 승무원들을 대거 채용했었다. (그때 당시는 대거 채용이라고 했는데 지난번 서울 채용에서 한국인 80명을 뽑은 거에 비하면 참 귀여운 숫자...)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에어버스 380 기종을 운항할 수 있도록 라이센스를 받았고, 다른 국적의 승무원들은 회사에서 “랜덤”으로 뽑았다. 랜덤이라고 하지만 신입 말고 회사에 다닌 지 오래된, 소위 말해 “짬밥이 좀 찬” 애들 위주로 뽑았고 이번에 에어버스 350 기종 승무원들도 그런 식으로 뽑았다.





350 기종의 라이센스를 가진 승무원들은 주로 턴 비행 (인도, 파키스탄, 이스탄불 등등) 아니면 미국 레이오버만 해서 스케줄에 불만이 많은 편이었다. 그런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350 크루들만의 큰 장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같이 일하는 승무원들이 다 노련하다는 것이었다. 요새 신입 승무원들이 많이 들어와서 이코노미 클래스 일하는 게 쉽지 않다고 얘기를 많이 듣고 있는데, 일의 숙련도가 높은 동료랑 같이 일하면 손 발이 딱 딱 맞아서 일을 쉽고 스무스하게 끝낼 수 있다. 승무원은 체력이 중요한 직업이니 만큼 체력 분배를 잘하는 것도 중요한 데, 350 기종을 할 때는 몸을 사려가면서 “적당히” 일해도 컴플레인 하나 없이 비행 분위기가 너무 좋다는 것.





요새 매 비행에 수피 비행(트레이닝을 마치고 정식으로 비행하기 전 하는 수습 비행)을 하는 신입 승무원들이 탄다. 어쩌다가 수피 비행 두 개를 같이 한 신입 승무원 하나가 나한테 어떻게 하면 자기도 일을 “빨리” “잘” 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나는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시간이 지나면 다~~ 잘하게 될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다음 달부터 새로운 갤리에서 일하게 될 미래의 나야, 너무 쫄지 말고 하던 대로 하자. 짬에서 나오는 봐이브~~ 를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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