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을 꿈꾸는 모든 준비생들에게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독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 승무원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확고해졌다. 대전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나는 학부 수업을 들으면서 틈틈이 승무원 스터디를 했고, 2011년도에 처음으로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 면접을 보러 갔었다.
결과는 실무 탈락.
이번 면접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다음번 면접 때 더 잘하자 생각하며 더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아시아나항공 채용이 바로 떴고, 아시아나항공 대비 반짝 스터디를 하면서 또 면접 준비를 나름(?) 열심히 했다. 하지만 결과는 또 실무 탈락. 제주항공이나 이스타항공, 진에어는 나에게 면접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두 번이나 1차 면접에서 떨어진 사실에 자존심이 굉장히 상했다. 영어도 못하는 편이 아니고 승무원이 잘 어울릴 것 같다, 이미지가 좋다는 소리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많이 들었는데 왜 떨어지는 건지 너무 속이 상했다. 그래도 습관처럼 계속 스터디는 나갔다.
몇 달 후 대한항공 채용 때 또 지원했고, 결과는 또 실무면접 탈락
그리고 난 이 면접 이후로 스터디를 나가지 않았다.
그때 같이 승무원 준비를 했던 스터디원 세 명이 다 아시아나 항공, 이스타 항공에 합격하면서 스터디가 졸지에 없어지게 되기도 했고, 같이 준비한 친구들은 다 붙었는데 나만 안됐다는 사실이 어린 마음에 너무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내 인생에 승무원은 없나 보다.”
“나는 승무원 될 팔자가 아닌가 보다.”
라는 못난 생각을 하며 정신승리를 했다. 서울로 방을 구하러 다니는 스터디원들을 보면서 진심으로 축하해주기보다는 나는 도대체 왜 안된 건지, 왜 나만 떨어진 건지 나 자신이 싫어지기만 했다. 심지어 스터디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면접 준비를 거의 안 한 친구가 바로 아시아나항공에 최종 합격한 걸 보면서 승무원 면접의 기준에 대해서 욕하기 시작했고 남 탓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나는 누구를 진심으로 축하해 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그때의 내가 가지지 못한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면접관들 눈에는 그게 당연히 보였을 거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기 싫었던 스물다섯 살의 나는 승무원 면접의 기준은 애매하고 승무원이 되는 것은 운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심지어 비행기는 비행 말고 여행할 때 타면 되고 어차피 승무원 하면 체력적으로 힘드니 체력이 약한 나는 합격했어도 오래 못 버텼을 거라고 생각하며 승무원 채용은 그 후로 쳐다도 안 봤다.
다음 해 나는 대학교 졸업을 했고, 흔한 취준생들처럼 사기업을 준비했다. 컴활이랑 워드 자격증도 공부하고 토익도 준비하고.. 특히 주변에 금융권 취업을 선호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친구들을 따라서 삼성생명 SFP 인턴도 해보고 금융 3종 자격증 공부도 기웃거리면서 승무원에 대한 꿈을 애써 접으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후배 한 명이 나에게 한마디를 했다. 나는 언니가 승무원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진짜 한 번 다시 해봤으면 좋겠다고, 너무 잘할 것 같다고.
그 말을 들은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내가 억지로 힘들게 가슴 한편에 꾸깃꾸깃 접어놓은 내 꿈 한 조각이 날아가고 싶다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나 자신에게 솔직히 물어봤을 때, 사실은 태어나서 승무원 안 하고 죽으면 너무너무 억울할 것 같았고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해보고 싶었다.
그날 이후로 난 승무원이 되는 거에만 전념했다. 나이도 있고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인데 왜 그렇게 많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시간도 많지 않으니 딱 1년만 열심히 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에 플라이두바이 1차 면접, 다음 해 1월에 최종 합격을 했고 2월에 두바이를 오게 되었고 3월부터 비행을 시작했다.
올 해가 내가 처음 승무원 스터디를 한 지 딱 10년째 되는 해다. 그리고 그때 스터디원 중에서 유일하게 면접에 떨어졌던 나는 지금 유일하게 현직 승무원으로 비행 중이다. 그러니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