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21세기 시선
아날로그 X세대 여성으로 태어나 살아오면서,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에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는 패미니즘에 치우친 여성은 아니다. 다만 세상의 본질을 알고 싶을 뿐이다.
어머니대 까지는 사회 여러면에서 정당한 존중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많이 보였다. 사회에는 여성에 대한 유리 천장이 분명히 존재했고 여전히 여성의 희생을 요구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그럼에도 억척같이 자신의 역할을 해내시는 여성들의 모습은 원더우먼처럼 위대해 보였다.
2000년 밀레니엄 시대부터 갑자기 여성상위 시대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사회에 대두되었다. 이 말에 기세 등등한 남성도 짓눌려 있던 여성도 당황했다. 갑자기 여성상위 시대라니.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서서히 실력과 능력이 출중한 여성들이 사회에 두각을 내기 시작했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여성이라는 존재는 인간이라기 보다는 번식을 위한 동물적인 소비재였고 재산이었고 소유물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어느 날, 중세시대 900년간 유럽 사회에서 자행된 잔혹한 마녀사냥이라는 것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민하고 똑똑하고 부유하고 아름다워서 눈에 띌수록 부러움과 질투와 미움의 대상이 되었고, 능력과 실력이 뛰어날수록 두려움의 존재가 되었던 것 같다.
책을 보다보면 가끔 그 시대의 이야기들이 섞여 나오곤 한다. 이번에도 김진명 작가의 직지 라는 책을 읽는데 중세시대 마녀사냥 시대의 이야기가 나왔다. 역시나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중세시대는 신학, 정치, 경제가 얽힌 복합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교회는 신앙 통제를 강화했고, 남성 중심의 사회는 여성 지식을 배제하며 권력 안정성을 유지했으며, 사람들은 질서 회복이라는 명목으로 폭력에 동참했다.
사회에 혼란이나 고통스러운 일 또는 혁신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그 원인을 본질에서 찾지 않고 누군가에게 프레임을 씌워서 희생양으로 삼았다. 두려움을 다스리지 못하는 집단 군중 심리.
자연에는 항상 균형을 향한 흐름이 있다. 극단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억압은 시간이 지나면 반대 방향의 해방 운동을 낳는다. 마녀사냥의 시대는 바로 그 진자가 극단으로 치우친 시기였고, 이후 인류는 이성, 계몽, 과학, 인권, 여성운동을 통해 균형을 회복해왔다.
대자연은 언제나 자연을 이해하는 존재인 직관적인 인간, 치유자, 현자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려 했다. 그러나 당시 인류의 의식 수준이 그것을 수용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기에 그 지혜는 두려움의 형태로 반사되었던 것 같다.
정보사회 지식사회를 넘어 이제는 대자연의 법칙과 영성이 중요해지고 있는 요즘이다. 중세시대 900년 동안 이어졌던 지혜, 사랑, 영성, 대자연의 법칙을 세상에 드러냈던 분들을 잔혹하게 처리했던 역사를 되돌아보며, 모든 것에는 때가 있어서, 때가 되지 않았다면 조용히 침잠하는 게 대자연의 이치라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때가 되었다면 대자연이 거세게 활동하는 것처럼 거침없이 뜻을 펼칠 줄도 알아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주 오랜시간 동안 여성의 존재와 여성의 영적인 지혜는 처참하게 짓밟혀 왔지만, AI의 출현과 더불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여성들의 영적인 지혜와 사랑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축이 되어야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은 분명히 알겠다.
이세상 모든 여성들이 한없이 자애롭고 인자한 모성으로 지혜롭고 부드럽게 세상을 품어안고 다독여간다면 세상은 서서히 아름답고 평화로워질거라 믿고 있다. 우리 어머니가 우리에게 그러셨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