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심사 준비 이야기
5월 초,
새 마음 새뜻으로 공부를 시작 한지 두 달, 첫 시험 후 네 달 만에 두 번째 IELTS 시험을 보았다. 다행히도 모든 파트에서 점수가 조금씩 올랐다. 아직 목표에는 못 미치는 부족한 점수였지만, 그래도 슬슬 감을 잡아가고 있었기에 공부를 하는 만큼 성과가 나올 것 같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5월 말,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호주 약사 시험 등록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일전에 상담했던 이민 법무사님과 기술 이민 비자 신청 대행에 대한 계약을 하고, 대행비의 절반 금액과 기술심사 신청비($600)를 지불했다. 해외 약사를 위한 호주 약사 예비시험은 1년에 두 번, 3월과 9월에 있었는데, 다가오는 9월이 아닌 다음 해 3월 시험 접수를 준비하기로 했다.
시험 접수를 하기 위해서는 마감일 전까지 시험 신청서와 함께 서류 심사 통과와 영어 시험 결과, 두 가지를 함께 제출해야 했다. 내가 기한 안에 '영어 점수'를 받을 수 있느냐와 별개로, '서류심사'에도 최소 6주의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9월 시험의 마감일까지는 결과를 받기 아무래도 힘들 듯했다. 대신 지금 바로 준비하기 시작하면 3월 시험 접수 마감인 12월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6월 중순,
필요한 서류 준비도 하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안부도 전할 겸, B의 방학 일정에 맞춰서 급 한국행을 결정했는데 떠날 준비를 하던 중에 좋지 않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호주는 매년 7월 이민법 세부 사항들을 개정하는데 이번 업데이트 때 '부족 직업군'에서 약사가 빠질 것이란 소식이었다. 이것은 다른 조건 없이 내 힘으로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독립 기술 이민'이라는 가장 쉬운 길이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이런 변수에 대해서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민법은 매년 바뀌고, 이민의 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의 길이 막힌다고 방법이 아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독립적으로 비자를 받는 것은 불가능해졌지만, 비자를 후원받는 방법이 남아있었다. '주정부 후원 비자'가 차선책이었다. 절차가 조금 더 복잡해지고 조건이 까다로워지긴 하겠지만, 여전히 희망은 있었다.
6월 말 - 7월 중순,
3주가 조금 넘는 한국 일정이 꽤 길고 여유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부산에 도착한 지 1주일 만에 IELTS 시험을 한 번 쳤고, 출국하기 3일 전에 또 시험을 쳤기 때문에, 시작부터 끝까지 시험공부에 묶여있어야 했다. 열 달만의 한국행이었는데 좀 아쉬웠다. 한국에서 브리즈번으로 돌아오자마자, 준비해온 서류들을 모두 이민법무사님에게 전달했다. 서류심사는 이제 법무사님의 몫이었고, 나는 시험 접수 마감일 전까지 영어 공부에 매진해서 IELTS 점수만 잘 받으면 되었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8월,
특별한 일 없이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IELTS 시험에 익숙해지고, 혼자 공부하는 법을 알게 된 나는 계속해서 독학으로 영어 공부를 해나갔다. 다른 하는 일 없이 영어 공부만 하는 것은 직장에 다니거나 아이를 돌보며 공부하는 것보다는 분명 쉽겠지만, 그 한 가지만 하는 것도 참 지치는 일이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왔고, 호주에 온지도 1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내가 이룬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9-10월,
계속해서 시험을 쳤지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이었다. 스트레스가 점점 더 늘어갔다. 그러는 동안 기술심사 결과는 나왔는지 연락이 없는 법무사님이 궁금하긴 했지만, 전화를 했다가 영어 성적은 나왔냐고 물으면 숨고 싶을 것 같아 먼저 연락하기를 미뤘다. 생각하면 멀미가 날 것 같은 그런 이상한 기분이었다.
어느덧 11월,
계속 이렇게 기다리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무거운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간단한 안부 인사가 오갔다. 기술심사 진행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는 질문에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법무사님은 아직 서류 접수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더니 "영어 점수도 아직 나오지 않았잖아요"라는 말을 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애초에 서류심사를 위해서는 영어 점수가 필요 없는데. 서류들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 일부러 6월 말에 급히 한국에도 다녀왔던 것 아니냐고요.
"아... 그랬었나요...?"라고 답하는 법무사님의 목소리는 당황한 것 같았다. 법무사님이 정말 영어점수가 나와야 서류심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착각을 했는지, 어차피 서류를 통과해도 시험 접수 전까지 내가 영어점수를 못 받을 거라 생각하고 여유를 부린 건지, 아니면 다른 고객들 일처리 하느라 내 서류를 뒷전에 둔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이미 벌어진 것이었다. 정식 계약을 하고 기술심사 비용을 모두 지불하고, 필요한 서류를 모두 넘기고 나서 세 달이 넘게 지난 시점까지도 서류를 접수조차 하지 않았다니...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나서 말도 잘 나오질 않았다.
접수 마감 날짜인 12월 15일까지 남은 시간이 5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최소 6주 걸린다는 서류 심사 결과가 시험 접수 마감일 전에 나올 수가 없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제 내가 영어 점수를 받는다고 해도 3월 시험 접수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고, 반년을 더 기다려서 그다음 9월 시험을 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법무사님은 지원자가 많이 없으면 더 빨리 진행될 거라며 아직 늦지 않았을 거라는 말로 나를 달래려고 했다.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어떻게 일을 그렇게 처리하시냐고 화내며 막 따지고 싶었는데, 꾹 참고 일단 지금이라도 최대한 빨리 접수를 해달라고 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도와주지 않는 케이스였기 때문에 그곳과 틀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더 빨리 연락해서 진행상황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내 잘못도 있다고 생각하려 했고, 무엇보다도 아직은 남은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화를 내고 있을 시간에 해야 할 일들을 빨리 하자고 생각했다.
그제야 일을 시작한 법무사님은 새로 업데이트된 정보에 11월 1일에 기술 심사 비용이 $100이 올랐더라며, 돈을 추가로 입금해달라고 했다. 원래대로 진행했으면 내지 않아도 될 비용이었지만, 그냥 보냈다. 더 추가해야 할 서류도 있다며 사무실에 가져다 달라고 했다. 미리 말했으면 한국에 갔을 때 준비해올 수 있었던 서류였지만, 느려 터진 호주 인터넷으로 한국 웹사이트 특유의 수많은 보안 프로그램들과 싸워가며 출력해서 가져다주었다.
11월 15일, 법무사님에게서 빠른우편으로 서류를 발송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11월 22일에는 나의 일곱 번째 IELTS 시험 결과가 나왔다. 1년 넘게 공부했던 결과가, 내 손안에 들려있었다.
L 8.0 / R 8.5 / W 7.0 / S 7.0 = Overall 7.5 (목표 점수: 각 파트 7.0 이상, 평균 7.5 이상)
내가 정말로 마감일 전에 목표를 달성한 것이었다.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냈다.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나는 B와 부둥켜안고 방방 뛰었다. 정말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 그렇지만 온전히 기뻐하고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법무사님에게 전화로 영어 점수가 나왔다고 알렸다. 나는 내가 할 일을 다했다고. 그는 서류 심사를 좀 더 빨리 해달라고 요청해보고 있지만, 순서대로 하고 있으니 기다리라는 답변만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12월,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다
시험 접수 마감일 12월 15일이 지났고,
시험 접수를 할 수가 없었고,
법무사님은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 기분이었다. 사방이 깜깜한 한밤중에, 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 길이 있는 것 같다며 찾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 손을 잡고 어둠 속을 계속 걸어가다 동이 트려는 듯 주위가 조금씩 밝아졌을 때, 그 안갯속에서 나는 우리가 그냥 같은 곳만 계속 맴돌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새벽, 자욱한 안갯속을 걷고 있는 기분.
정말 길이 있는지, 이 길이 맞는지 여전히 모른 채..
나는 그 손을 놓을 수도, 그 손만 믿고 있을 수도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