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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파동

by 궤적소년

사람은 저마다 다른 빛과 색, 무한한 심연의 공간이다. 그 안에는 각각의 시간을 품은 빛줄기와, 끝없이 펼쳐진 채로 버티는 어둠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저, 그 빛 속을 멍하니 들여다본다. 정지된 순간 속에서 사랑이 그렇게 시작된다.


살아있음이란, 예상 못 한 작은 떨림을 심연에 드리운다. 이 떨림이 바로, 삶과 사랑의 근원이자 일렁이는 파동이다. 심연과 심연이 만나 서로의 떨림을 공명 시킬 때, 비로소 사랑은 울림이 된다. 이 만남은 자연의 법칙과 같아서,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위태롭다. 한 심연이 다른 심연에 잠기며, 그 깊은 곳에서 서로를 비추는 빛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본질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이 있다. 한결같은 바다에게 새로움을 기대한다면, 그 바다 역시 권태의 늪에 빠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연도 변한다. 처음의 빛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색은 옅어진다. 그렇기에 사람은 끊임없이 물결치는 파동과 같아야 한다. 새로운 빛과 색을 만들어내는 창조자여야만, 사랑의 깊이를 유지할 수 있다. 창조하는 이들만이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심연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변화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심연의 파동 속에서 흔들리는 마음이야말로, 사랑의 진한 떨림이다. 그 떨림들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소리, 그 소리 속에 사랑은 살아 숨 쉰다.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결국, 두 심연이 서로의 깊이를 인정하고, 그 안에 기꺼이 빠져드는 용기 아닐까. 빛도 색도 고정되지 않은 채로, 오직 떨림만이 영원한 이 세상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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