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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Jan Jul 17. 2021

무지갯빛 여름

일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낮동안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더니 오후 늦게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었다. 덕분에 아이들과 조금 일찍 저녁을 먹었다. 그 사이 비도 멈추고 더위도 한풀 꺾였다. 한참 뛰놀기 좋아하는 아이들과 집을 나서기로 했다. 현관에서 급히 신발을 신다 돌려놓은 빨래를 널지 않은 게 생각났다. 여름철 꿉꿉한 냄새가 나지 않으려면 바로 널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나 서둘러 베란다로 갔다. 그런데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젖어 있는게 아닌가. 세탁기에서 나온 물을 배수구로 연결해주는 호스가 분리되면서 참사가 일어난 것. 손질하지 않고 자루에 대충 담아둔 양파와 마늘, 그리고 아이들 주먹만 한 감자에 물이 베였다. 미루는 습관이 불러일으킨 일이었다. 외갓집에서 보내준 귀한 마늘과 몇일은 두고 먹을 양파와 감자들을 보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늘 아까운 마음보다 귀찮은 마음이 앞서던 나는 이번엔 다른 선택을 해보기로 했다. 우렁각시가 대신 해줄 리도 없고, 얼른 정리하자!


싱크대에 그것들을 하나하나 옮겨 골라내기 시작했다. 눈도 따갑고 냄새도 고약했다. 혼자서 열을 내며 손질하던 차, 아빠와 거실에서 놀던 첫째가 소리쳤다. "무지개다!" 남편이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어? 쌍무지개인데?" 급히 손을 닦고 거실로 향했다. 선명한 무지개 하나가 빙그레 웃고 있었고 그 위로 흐릿하지만 분명한 또 하나의 무지개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쌍무지개는 행운의 상징이라던데 좋은 일이 생기려나보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기대하지 않던 기분 좋은 일이 생기길 바랐던 걸까. 문득 지금 우리에겐 어떤 일이 '행운'일까 생각했다. 갑자기 큰 돈이 생긴다거나 빼어나게 아름다운 미모를 갖게 된다면 조금 더 행복할까. 시간을 되돌려 10대나 20대로 돌아간다면? 글쎄. 아이를 낳고 줄어든 가슴이 원래대로 회복한다면야 모를까. 신나게 사진을 찍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주방으로 돌아와보니 반대편 하늘은 무지개보다 더 아름다웠다. 구름사이로 해가 지며 하늘이 온통 코랄빛으로 물들었다. 시간이 지나며 옅은 핑크빛과 진한 보랏빛이 교차하다 설명할 수 없이 아름다운 황혼의 빛으로 변해갔다. 버리지 않고 미루지 않으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낸 우리에게 주는 선물처럼, 그날의 하늘은 계속해서 색을 바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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