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 이내의 삶
주민등록 주소지가 ‘읍‘ 이 된 지 벌써 5개월이다. 저 푸른 초원 위는 아니지만 구획 단위로 분양해서 1~2년 사이 지은 집이 모여있는 전원 단지는 꽤 그림 같기도 하다. 우리 집은 고요하고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따금씩 산책이 하고 싶을 때면 십분 남짓 논 길을 걸어 근처 옛날 시골 동네를 구경하고 오는 게 나름의 산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주자가 대부분 어르신인 이 산책길에서 낯선 나를 반기는 건 유달리 크게 짖는 동네 개들뿐이다. 허름하고 오래된 개집에 목줄을 채워두고, 나 같은 이방인이 왔을 때 크게 짖기를 기대하는 그야말로 집을 지키는 개. 나를 보고 무섭게 달려드는 개도 있고, 어딨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목청은 유달리 좋은 개도 있다. 그렇게 귀 따가운 산책을 마무리하고 우리 집 근처에 다 와갈 때면 유달리 심드렁한 개 한 마리가 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시골 개 n 년 차라 무해한 사람을 알아보는 걸까? 걔는 하반신만 들어가는 허름한 집에 엉덩이를 쑥 집어넣고는 심드렁하게 엎드려 있다. 내가 다가서도 크게 짖지도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저 고개를 들고 눈썹을 추켜올려 흘끔 눈길만 건넬 뿐이다. 이따금 간식을 챙겨줘도 절대 꼬리를 흔드는 법이 없다.
견주는 몸이 좀 불편한 채로 혼자 사는 노인이었다. 그래서인지 개가 처한 환경은 유난했다. 집 옆에는 치우지 못한 똥이 수북했고, 한 번도 풀어본 적 없는 것 같은 굵고 묵직한 쇠 목줄 때문에 목 주변 가죽은 시커멓게 죽어있다. 극진한 보살핌도 특별히 재밌는 일도 없지만, 들개처럼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는 않는 배곯지 않는 삶. 밥 잘 먹고 똥만 잘 싸면 되는 그게 세상의 전부 인, 목줄 반경 1m 안에서만 맴도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삶.
사실 요 며칠 나를 산책으로 이끈 건 일터에서 만난 여러 문제들이었다. 갑작스럽게 받은 보직 업무는 어깨를 무겁게 했고, 뜻하지 않게 받은 타 사업부로의 이동 제안은 나를 고민하게 했다. 그러나 나는 지원할 수 없었다. 안정된 내 직무에 갑작스러운 변화를 줄 용기도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각오도 없었기 때문에. 경험치로 웬만큼 커버할 수 있는 지금이 좋지도 않았지만 싫지도 않았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목적 없이 걷는 산책뿐이었다. 반경 1m 안에서만 맴도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삶.
날씨가 선물 같던 어느 가을날 산책을 나갔다. 이제는 좀 익숙한 내 산책 루틴을 돌아 마지막 집에 다다랐을 때 너무 심드렁해서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를 개는 거기 없었다. 힘겹게 한 발 떼는 견주만 마당의 잡다한 일을 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인사를 건네고 빈 개집을 가리키며 물었다. “얘 어디 갔어요?” 그는 특유의 말투로 웅얼거렸다. ”내가 잘 못해줘서... “ 그리고 힘줘 말했다. “입양,, 입양 보냈어요” 반경 1m를 벗어난 개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유난히도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