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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나니공주 Aug 13. 2022

어른들의 말

쩜쩜체와 깨발랄체 그 사이 어딘가

 요즘 친구들과 연락할 때뿐 아니라 회사 업무 메신저 중에도 유독 말 줄임표를 넘어선 점을 많이 사용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완료했습니다..." "확인 바랍니다..."  등등 심지어는 ㅋㅋㅋ 뒤에 점을 붙일 때도 있다. 회사에서는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며 사번도 없애버린 마당에 나는 말투로 연식을 뿜어내는 중이다.


 보통 나보다 열 살쯤 많은 부장급의 말투는 두 개로 나뉜다. "그래요... 고생하셨네요...." 어떤 말이든 무한 점을 붙이는 쩜쩜체 유형과 "두리쓰~ 취합 좀 해주삼~" 같은 깨발랄 유형이다. 나는 나를 발랄한 인간상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쩜쩜체에 더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깨발랄형이든 쩜쩜형이든 바뀌지 않는 사실은 나는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고, 나이가 들수록 바뀌는 말투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며 비슷한 말투를 가지게 될까?


 '할 말을 줄였을 때나 글의 일부를 생략할 때 머뭇거림을 보일 때 쓰이는 것' 이 것이 말 줄임표의 사전적 정의이다. 내가 주로 쩜쩜쩜... 을 썼던 경험들을 복기해보면 정확한 정의인 것 같다. 그중에서도 글의 일부를 생략할 때 쓰는 것 그것이다. 더 할 말이 있지만 그냥 여기까지만 말하고 말자는 나의 무의식이 쩜쩜체로 발현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예로 들어보자. 사실 나는  메신저를 쓰면서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일단 답장을   고맙긴 하지만 회신 납기 3일로 지정해서 보낸 업무 요청을 열흘 지난 지금에서야 요청한 규격도 아니고 raw 가까운 엑셀로 보내준다고?! 이런 나의 속마음을 생략하고 참고 머뭇 머리며 말을 줄였던 것이다.


"ㅋㅋㅋ..." 경우도 비슷하다.  대박 그런 일이 있다고?! 개웃기닼ㅋㅋ 근데 그런 일을 이렇게 전달하고 웃음거리 삼으면  되는  아닌가  친구도 찌라시 주인공이 돼서 한동안 힘들어했었는데 웃기긴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고작   개에 이런 수많은 나의 생각들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두 번째 깨발랄 유형은 힘든 일이지만 최대한 말을 밝게 함으로 힘든 상황을 좋게 환기해보려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회사에는 업무만 힘든 게 아니다. 마주치기 껄끄러운 사람들과 매일 마주쳐야만 하고, 걸을 때만 빼고 24시간 다리를 떠는 옆자리 동료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이렇듯 힘든 현실을 밝게 말하며 환기해보는 것이다. 실제로 "두리쓰~ 취합 좀 해주삼~"이라는 메신저를 받으면 정말 이틀은 꼬박 걸리는 일인데도 이십 분 만에 끝낼만한 일인 것 같은 이미지를 주기도 했다.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시간이 지날수록 묘하게 닮아가는 저 말투들을 파악해보니 노인네 느낌이 난다는 것 외에는 딱히 단점이 없었다. 몇 개의 유형으로 모아지는 저 말투들은 오랜 시간 밥벌이를 해 온 사람들의 나이테이자 훈장과 같은 게 아니었을까? 불필요한 말은 참아야 하고, 힘든 상황도 말로나마 가볍고 긍정적으로 만들어 볼 수 있는 것이다. 쩜쩜체와 깨발랄형 모두 오랜 풍파를 견디고 완성된 꼰대들의 짬에서 나온 바이브였던 것이다.


 얼마 전 나와 10살 차이가 나는 신입사원이 입사했다. 사회초년생 그녀 눈높이로 보기에 내 동료들은 다 자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또 각자 다른 자리에서 초보 아빠로 신입 파트장으로 새롭게 자라야 한다. 그 성장과정에는 많은 경험과 인내가 있다. 그 시간이 용해되어 있는 밀도 있는 쩜쩜체가 싫지 않다.


나이 들면서 깊어지는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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