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님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두 가지도 되죠!, 사 가지만 아니면 됩니다 하핫" 작년에 입사한 그러니까 나보다 10년 늦게 입사한 후배 사원과 내가 얼마 전 실제로 나눴던 대화다. 나름 회심의 개그였는데 사무실 분위기가 싸해짐을 느끼고 급하게 사과했다. 그렇다. 이제 나도 아재 개그가 자연스레 나오는 나이가 된 것이다.
아재 개그라고 통칭되는 이런 유의 농은 피식하는 헛웃음도 자아내지만 대개는 야유를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이 아재 개그를 질색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정말 노잼을 못 견뎌하는 부류 그리고 두 번째는 자신이 아재가 되었음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부류 두 개로 나눠볼 수 있겠다.
어느덧 연차도 아재급이 되었음을 순순히 인정하는 나는 사실 저 아재 개그를 하고 좀 뿌듯했었다. 맞다, 사실 나 아재 개그 좋아한다. 피식이 주는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재 개그는 사무실의 경직된 분위기도 완화해 주고, 대하기 어려웠던 부장/과장에게 공식적으로 야유를 날릴 수도 있게 한다.
이뿐인가? 아재 개그는 가성비가 좋다. 혹시나 실례가 될 수 있는 사생활이나, 선 넘는 질문에서도 자유롭다. 다만 조금 썰렁하고 재미가 없을 뿐이다. 나 자신이 아재임을 인정하고 나면 누군가를 낮추거나 공격하지 않고도 분위기 쇄신을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따금씩 큰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두 팔을 벌려 한 아름 안아보아도 좀처럼 품에 담을 수 없는 고목들. 수백 년 세월을 살아낸 이 나무를 우리가 지금 볼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나무들은 맛있는 과실을 맺지도 않고, 어떠한 재목으로도 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토록 오래 살아남은 것이다.
아재 개그도 아름드리 고목과 궤를 같이한다. 재미도 감동도 없고 그다지 교훈도 없어 보이는 아재 개그가 이토록 오래 명맥을 유지한 이유는 별 쓸모가 없다는 쓸모 때문이다. 별 쓸모없는 듯 보여도 예의 있고 가성비 좋은 아재 개그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금요일 퇴근길 “즐주 하세요!”라는 말에 “즐주가 즐겁게 마신다는 건가요? 하하” 같은 노잼 개그를 던진다. 돌아오는 야유가 기껍다.
노잼에 낡은 개그를 구사할지언정 동료에게 선을 넘지 않고 싶다. 명불허전 아재을 향하고 있으나 생각만큼은 늙지 않고 싶다. 매년 낡은 나에게서 정년퇴직하고 신입사원의 마음으로 임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아재 개그로 수렴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