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허락한 유일한 즐거움
코로나 이후 마스크가 생활화된 무렵부터였을까? 출근 인사 이후 점심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건조한 날들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회사에서 피식하는 실소가 터져 나올 때가 있는데, 대개의 경우 마스크 안 입보다 손가락이 더 빠르고 격하게 웃곤 한다. ㅋ가 많아질수록 입도 웃고 있을 확률은 올라간다.
입보다 손이 빠르게 웃는 이런 경우는 보통 동료들보단 친한 몇몇 사람과 나누는 잡담 메신저에서 나오곤 한다. 부서 내 동료들과는 하기 어려운 말들이 오가곤 하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왜 때문에 빡이 쳤는지, 어떤 놈이 그랬는지를 말하기에 이만큼 좋은 게 없다.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보면서 업무인 듯 아닌 듯 스릴 있게 잡담을 즐길 수 있는 시간. 심각한 척 한껏 힘준 미간만 있다면 나는 타이핑 몇 번으로 그룹장을 골로 보낼 수도, 방귀를 뀌어놓고 성을 낼 수도 있다. 그뿐인가 “시발 존나 힘들다” 같은 천박한 말도 유일하게 허락되는 곳이다.
잡담은 유일한 나의 구원이다. 할 일이 잔뜩 쌓여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자꾸만 눈물이 고여 모니터가 뿌옇게 보일 때에도 시답지 않은 잡담 몇 마디면 극복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속 시원한 말들을 내뱉고 나면 다시 열심히 일해 볼 마음도 생겼다.
잡담은 요상한 전우애도 만들어 줬다. 함께 신나게 누군가를, 상황을 까댔기 때문이었을까..?! 공범자라는 마음으로 끈끈한 우리는 서로의 분야에서 꽤 도움이 되는 존재이게 됐다. 동료라는 이름으로는 1g 부족한 인적 네트워크 마저도 채워준 것이다.
잡담은 회사 생활의 적절한 활력이다. 음악이 국가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듯, 메신저로 몰래 나누는 잡담이야말로 회사에서 허락한 유일한 즐거움이다. 누군가에게는 아침 탕비실에서 내리는 향긋한 커피일 수도, 회사 근처 맛집 일수도, 짝사랑하는 동료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 많은 열거는 회사를 그나마 즐거운 공간으로 만들어 준다.
그렇다. 나는 회사에 잡담하러 간다. 그러나 나는 일은 1도 안 하는 월루를 꿈꾸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열심히 일해왔고 앞으로도 열심히 일 할 것이다. 잡담은 회사라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아서 목마른 놈의 갈증을 해소해 준다. 시원하고도 은밀한 몇 마디를 내뱉고 나면 기분 전환은 물론 업무 효율도 오른다.
한동안은 내가 나를 돌보는 것 자체가 버거운 때가 있었다. 궁색하지 않기 위해 돈을 버는 건데 돈을 벌기 위해 궁색해지고는 했었다. 너무 힘이 들 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했을 때, 나는 나를 달랬다. 영롱이랑, 동기 오빠랑, 얼마 전 친해진 제조팀 사원이랑 잡담하러 회사에 간다고 되뇌었다. 나는 그렇게 나를 달랬다. 그럼 정말 좀 나아졌다. 잡담은 내가 일할 수 있는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줬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잡담하러 회사에 간다. 잡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회사 생활은 상상할 수 없다. 잡담은 회사에서 허락한 유일한 즐거움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