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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나니공주 Oct 30. 2022

Rustic Life

지난 토요일 오랜 시간 살았던 분당의 전셋집을 정리했다. 작년 안 좋았던 건강을 보살피고자 부모님의 시골집에 얹혀살기로 했기 때문이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들어오는 길 주변에는 배꽃이 지천이고 닭 대신 야생 꿩이 우는 이곳, 우리 집. 진짜 촌구석임을 다시금 실감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결국 서울 입성은 실패했냐며 조롱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아프니까 청춘이라던 김난도 교수가 날 위로해줬다. 2022년 트렌드 코리아에 러스틱 라이프라는 번듯한 말로 이 삶을 올 해의 트렌드로 짚어준 것이다. 갑작스럽게 나는 꽤 트렌디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러스틱은 시골의 촌스럽고 세련되지 못한 것을 말한다. 2022년 트렌드라는 러스틱 라이프는 도시와 시골의 삶에 밸런스를 맞춰 사는 것이라 한다. 예를 들면 관광지가 아닌 이름 없는 숲 속이나 인적 드문 시골에서 주말을 보내며 도시와 촌의 듀얼 라이프를 즐기는 것 같은 걸 말한단다. 나만의 힐링 공간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몰리면서 시골이 힙한 공간이 되었다고도 첨언했다.


  이사 첫날 부모님께서 집 근처에서 달래를 캐오셨다. 나도 손을 보태 엉성하지만 뿌리를 다듬고 달래 된장국도 끓였다. 손이 느리고 재주도 없는 내가 오로지 점심 한 끼를 위해서 시간을 쓰고 음식을 만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차린 봄 한 상을 먹었다. 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나를 대접하는 수고로움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유달리 진 빠진 퇴근길이면 나는 항상 매운 게 당겼다. 터치 한 번에 문 앞에 놓여있는 엽떡을 보면 심신의 안정이  찾아왔다. 머리를 틀어 올리고 먹는 뜨겁고 매운 떡볶이와 맥주 한 캔이 바로 나의 도피처였다.


 그런데 이렇게 쉽고 자극적인 배달음식이 아니라 오래 걸리고 심심한 달래 된장국도 위로가 되어 준다는 걸 알았다. 내가 나를 대접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러스틱 라이프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단순하게 나를 위해 먹고 자고 숨 쉬며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는 삶이었다.


 아픈 세상 화나는 일상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각박한 삶을 살아낸다. 이런 나를 위하는 시간과 수고가 필요한 시골의 삶을 우리는 러스틱 라이프라 이름 붙여 힙하다 말한다. 촌구석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각자 자신을 대접하기 위해 애쓴다면 그게 바로 러스틱 라이프를 즐길 줄 아는 힙스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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